새벽이 와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면 새끼 노루가 눈을 뜨듯 눈을 뜨는 호수가 있다. 1971년에 착공하여 1976년에 준공한 우리나라 최초의 양수 겸용 발전소인 안동댐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안동호가 그것이다. 이 호수 주변을 안동시는 2002년부터 문화관광단지로 개발해오고 있다. 그 결과 현재 세계물포럼기념센터, 유교랜드, 온뜨레피움, 전망대, 골프장, 드라마 <태조 왕건> 촬영장, 호텔, 상가 등이 듬성듬성 열린 포도송이처럼 들어서 있다. 안동호의 물은 안동댐을 빠져나가 그 보조 댐에 갇혀 강 모양을 유지한 또 하나의 작은 호수를 이룬다. 안동호에서 보아 이 호수의 왼쪽에 안동민속박물관이 있고, 오른쪽에 진모래와 임청각이 있다. 그리고 이 호수를 가로질러 월영교가 있다. 병산전투 필자가 초현실주의 화가라면 이 건조하게 나열된 이 이름들 가운데서 지렁이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조그마한 모래밭을 그리겠다. 그 모래밭은 석산과 병산 사이를 흐르는 개울이 강 모양의 작은 호수와 만나는 지점에 있다. 주민들은 이 모래밭을 진모래라 일컫는다. 견훤(진훤)이 진을 친 곳이라 하여 그렇게 일컫는다고 한다. 밤이 와 안동호가 눈을 감으면 어둠에 묻힌 진모래 속에서 신라 말 지렁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진모래의 오른쪽에 있는 산의 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와룡면 서지리에 솟아 있는 산봉우리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이 병산 봉우리이다. 그리고 진모래의 왼쪽에 있는 산의 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병산의 맞은편에 솟아 있는 산봉우리를 만나게 되는데 이것이 석산 봉우리이다. 이 두 개의 봉우리가 거느린 산, 즉 병산과 석산에서 천 년도 더 넘는 시간의 저 편에서 역사적인 병산전투가 있었다. 그 광경을 떠올려본다. 927년 공산전투에서 패한 왕건은 후퇴하여 죽령에 진을 치고 있었고, 견훤은 고창을 포위하여 이러한 왕건의 남하를 막고자 하였다. 이 상반된 두 힘이 맞부딪혀 929년 12월부터 이듬해 정월까지 약 두 달 동안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었다. 먼저 유금필이 이끄는 고려의 선봉대가 예안 지역의 저수봉에서 견훤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 전투에서 고려의 선봉대가 승리하였다. 견훤군은 후퇴하여 고창의 석산에 진을 치고, 왕건의 본대는 진격하여 석산 맞은편의 병산에 진을 쳤는데, 그들 사이의 거리는 약 50보였다. 두 군사는 낮 동안 치열하게 싸웠으나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 때 고창 성주였던 김선평이 왕건을 도움으로써 신라의 경애왕을 죽인 견훤을 응징하고자 하였다. 밤이 되자 그는 이 지역에 사병을 많이 거느리고 있던 김행, 장정필과 힘을 합쳐 견훤을 기습 공격을 함으로써 견훤의 팔천 군사를 함몰시켰다. 이것이 저 유명한 병산전투이다. 이 병산전투의 소식을 전해들은 영안·하곡·직명·송생 등 30여 군현이 고려에 귀부하였으며, 다음 달에는 강릉 지역에서 울산 지역에 이르기까지의 110여 개 성이 고려에 귀부하였다. 이로써 왕건은 후삼국 통일의 돌이킬 수 없는 대세를 잡게 되었다. 이에 고려 태조 왕건은 고창군 성주였던 김선평에게 대광, 김행과 장길에게는 대상의 벼슬을 내렸으며, 김행에게는 권씨 성을 하사하였다. 그리고 고창군을 “해동을 평안하게 하였다”고 하여 안동부로 승격시켰다. 오늘의 안동이란 지명은 여기서 비롯하였다. 김선평, 권행, 장길은 각각 안동김씨, 안동권씨, 안동장씨의 시조이며, 이들의 족보를 보면 그들은 모두 그 벼슬이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 태사 아부에 이르렀다. 이 세 고려개국공신을 후인들은 삼태사라 일컬으며, 그 공덕을 추모하여 왔다. 안동시에 위치한 태사묘는 그 추모의 물적 증거이며, 차전놀이는 그 추모가 예술로 승화한 무형문화재이다. 이러한 병산전투는 민중의 상상력과 결합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낳았다. 병산과 석산 사이 개울이 휘돌아 병산자락을 여근 모양으로 만드는 곳이 있다. 이곳 속에 남근 모양의 석산자락이 뻗어 있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어, 여근 속에 든 남근은 죽기 마련이므로 남근을 가진 석산에 진을 친 견훤이 여근을 가진 병산에 진을 친 왕건에게 패하였다는 이야기가 그 하나이다. 그런가 하면 석산 뒤의 밥박골에 사는 안중 할머니가 고삼 뿌리를 섞은 독한 술을 빚어서 후백제군의 장수들에게 먹여 크게 취하게 한 후, 이 사실을 삼태사군에게 알려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이 이야기의 일정 부분은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전쟁에서의 민초의 역할을 강조하고자 하는 민중의 의식이 이 이야기의 밑바닥에 깔려 있음을 간과할 수는 없다. 또 그런가 하면, 진모래에 얽힌 이야기도 만들어져 전해온다. 견훤은 원래 지렁이의 화신이었기 때문에 위태로우면 모래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삼태사가 병산에 진을 치고 있을 때 견훤은 그 동쪽 낙동강 변 모래땅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견훤은 싸우다가 불리해지면 모래 속으로 숨어들곤 하였다. 이에 삼태사군은 흐르는 물을 막아 못을 만들고, 못 속에 소금을 부어 넣었다. 싸우다가 불리해진 견훤은 지렁이로 둔갑해서 모래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때 삼태사군은 소금물이 든 못의 둑을 터뜨렸다. 모래 속에 숨어 있던 견훤은 소금물을 견디지 못하여 목숨만 겨우 건진 채 도망갔다. 이것이 진모래에 얽힌 전설이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진모래를 본다. 병산을 향해 보아 진모래의 왼쪽에 영남산이 있다. 영남산 자락에 낙동강, 즉 아까의 그 강 모양을 유지한 호수를 바라보며 앉아 있는 고택이 있다.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귀래정, 영호루와 함께 고을 안의 명승이다.”라고 한 임청각이 바로 그것이다. 월영교 안동시내에서 차를 몰아 안동댐 방향으로 가는 사람에게는 왼쪽 철길 너머 산에 큰 규모의 고택이 보이는데, 이것이 이 임청각이다. 이 임청각을 뒤로 하고 안동댐 방향으로 좀 더 나아가면 오른쪽에 넓은 주차장과 함께 월영교라는 다리가 나타난다. 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필자와 함께 월영교를 거닐어보자. 2003년에 개통된 월영교는 바닥과 난간을 목재로 만든 인도교로서 폭3.6m, 길이 387m에 이른다. 5세기 초 안학궁 앞쪽에 설치하였던 고구려나무다리(북한 국보급 제160호)보다는 총길이가 12m 길고, 너비가 5.4미터 짧은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로 알려져 있다. 다리는 원래 “물이나 협곡 따위의 장애물을 건너거나 질러갈 수 있도록 두 지점을 연결한 구조물”로서 실용적 목적에 따라 고안되었다. 이 실용적 목적을 벗어나 심미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다리를 하나 소개해달라면, 필자는 주저하지 않고 이 월영교를 들겠다. 월영교가 있는 이 지역의 명칭은 달골이었다. 월영교를 건너면 엄달골이란 마을과 이어지고, 강 건너 산 중턱에는 옛 선비가 시를 읊었던 곳인 "월영대"가 옮겨져 있다. 월영교란 명칭은 공모에 의하여 이런 연유로 정하였다고 한다. 달빛이 호수를 비출 때, 그 달빛 속 월영교를 거닐면 한 폭의 그림 속을 거니는 듯한 느낌 속으로 빠져든다. 안동민속박물관 월영교를 건너면 안동민속박물관 경내로 들어서게 된다. 1982년 4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1992년 6월 26일에 개관한 안동민속박물관은 옥내 박물관과 옥외(야외) 박물관으로 이루어진, 총면적 5만 2,000평의 민속 전문 박물관이다. 옥내 박물관은 연건평 935평의 직사각형 콘크리트 건물이다. 건너편의 고색창연한 임청각이 고전적 미를 지니고 있는 건물이라 한다면, 이것은 현대적 미를 지니고 있는 건물이라 할 수 있다. 이 박물관은 전시실·수장실·기계실·작업실·시청각실·영상실·마당놀이장·휴게실·연구실(사무실) 등을 갖추고 있는데, 특히 전시실에서 기자·산속·어린이의 성장 과정·관례·혼례·회갑례·상례·제례 등 사람의 일생과 관계되는 전통적 생활양식, 화전놀이·놋다리밟기·차전놀이 등 안동문화권의 주요 민속놀이, 고려 공민왕의 친필 현판 등을 만날 수 있다. 옥외 박물관은 기존의 민속 경관지를 보완한 것으로 석빙고·안동댐 건설 시 수몰 지역에 산재하던 전통 고가옥·육각정·전통 연못 등을 이건하여 전시하고 있으며, 이육사 시비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서 석빙고는 보물 제305호로 낙동강에서 잡히는 은어를 국왕에게 진상하기 위하여 1737년(영조 13)에서 1740년 사이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안동댐의 건설로 인하여 1976년 본래의 위치에서 보다 높은 곳으로 옮겨놓은 것이다. 안동댐 건설 시 수몰 지역에 산재하던 것을 이건한 고가옥으로는 이원모 ㅁ자 기와집· 박명실 초가겹집·이춘백 초가겹집·박분섭 초가까치구멍집·이필구 초가토담집(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4호)·초가도토마리집(경상북도 민속자료 제6호)·돌담집·통나무집 등이 있다. 월영교에서 보아 왼쪽에 옥내 박물관이 있고, 오른쪽에 옥외 박물관이 있다. 두 개의 장승이 양 옆에 서 있어 열린 대문 역할을 하는 옥외 박물관을 들어서면, 왼편에 시비가 하나 서 있음을 볼 수 있다. 앞면에는 ‘陸史詩碑’라는 글자가 김충현의 전(篆)으로 새겨져 있고, 그 아래에 이육사의 시 <광야>가, 뒷면에는 조동탁의 찬(撰)이 배길기의 서(書)로 새겨져 있다. 이 시비 앞 안내판에는 “그는 윤동주 시인과 함께 일제 암흑기를 밝힌 찬란한 별이었다. 일제에 항거하는 강렬한 민족의식을 서정적으로 노래하고, 상징적 기법과 세련된 언어로 청초하고 고고한 세계를 구축했다.”고 적혀 있다. 육사시비를 뒤로 하고 드문드문 고가옥들이 들어서 있는 마을 언덕길을 넘어가면, 드라마 <태조 왕건> 촬영장을 만날 수 있다. 고려시대의 관아, 옥사, 민가 등 20여 채의 건물이 이곳에 들어서 있다. 여기서 발길을 안동호의 선착장으로 돌리면 물 위에 목선 여섯 척이 정박해있다. 주변에 두 채의 초가·깃발·망루·접안시설 등이 있는 이곳에서 치열한 해상 전투 장면을 촬영하였다. 이렇게 둘러보면 어느덧 하루해가 저문다. 어둠이 깔리면 새끼 노루가 눈을 감듯 안동호는 눈을 감는다. 눈을 감은 안동호의 꿈속에 달이 뜨면, 고즈넉한 동양화 속 진모래에서 지렁이 울음소리가 들려오리라.
병산서원 가는 길은 낙동강이 화산에 부딪히는 지점에서 언덕바지로 치켜 오른다. 이 길은 5리 비포장의 병산길이다. 차를 타고 간 것이라면, 서원 전방 5백m에 마련된 주차장에 주차하고 걸어서 병산서원으로 들어가야 한다.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과 그의 아들 류진을 배향한 서원이다. 병산을 안산으로 화산 동남쪽에 자리 잡은 서원이다. 고려 때부터 사림의 교육기관이던 풍악서당을 1572년에 서애가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1613년에 존덕사를 창건하면서 병산서원으로 개칭하였다. 2019년 7월, 도산서원 등 아홉 서원과 함께 병산서원이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복례문 안으로 들어서면 우선 만대루와 맞닥뜨린다. 병산서원은 진입 공간, 강학 공간, 배향 공간으로 구성되는데, 만대루는 진입 공간의 주체가 된다. 만대루는 병산서원이 지어질 때, 함께 지은 누각으로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翠屛宜晩對’에서 취하여 그 이름을 지었다. 해 질 무렵에 만대루 다락에 올라 바라보는 낙동강과 병산의 경치를 병산서원의 으뜸으로 친다. 굳이 해 질 무렵이 아니더라도 여름날 늦은 오후쯤에 이곳을 찾는다면 병산의 검은 바위와 푸른 숲이 절묘하게 어울리는 아름다움을 만나게 될 것이고, 낙동강에 반사된 햇살이 병산에 비춰서 일렁이는 물빛도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마음에 둘 일은 자연을 만대루 안으로 끌어들여 바라보는 것이다. 만대루의 여덟 개의 기둥이 만들어주는 일곱 개의 프레임은 그대로 산수진경을 담은 화폭 일곱이다. 이 화폭에 그려지는 그림은 시간에 따라 변하고, 계절에 따라 다르다. 만대루 관람을 마치고 다락 밑을 지나서 몇 개의 계단을 오르면, 바로 강학 공간인 입교당 마당이다. 입교당은 원장과 유생들이 모여서 강론하던 곳으로 병산서원의 중심이 되는 건물이다. 배향 공간인 존덕사는 입교당 돌아 들어간 후원, 열두 계단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이 계단 옆으로는 오래된 배롱나무가 무리 지어 벌여 서 있다. 이 꽃이 한창 피어나는 여름은 ‘書院’은 일순 ‘花院’으로 변한다. 배롱나무 꽃이 필 무렵에는 병산 산마루에 올라 병산서원을 내려다보아야 한다. 병산서원은 수천의 꽃으로 치장한 지상의 가장 아름다운 화원花園이 되어 있을 테니까 말이다. 관람을 마치고 나서는 길에 보고 가야 할 곳이 또 하나 있다. 달팽이 뒷간이란 이름을 단 서원 뒷간이다. 채 여미지 못한 누런 치맛자락 같은 바람벽으로 가린 이 뒷간은 병산서원의 마침표 같은 존재이다. 병산서원 앞에 이를 즈음 병산의 아랫도리를 깊이 파서 소를 이룬 낙동강은 키 낮은 풀들이 깔린 모래톱을 거느리고 구렁이처럼 소리 없이 흘러간다. 그 물낯바닥의 한쪽에는 병산이 푸르게 내려앉고, 다른 한쪽에는 구름 몇 장 거느린 파란 하늘이 슬며시 자신의 모습을 비춘다. 반공에 떠서 가파른 병산이 서쪽으로 기울어 잦아들면서 골짜기 하나를 내놓는다. 그 골짜기 안에는 평해 황씨 오랜 세거지인 인금 마을이 들어 있다. 인금은 강과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라 옛날엔 바깥출입이 여의치 않았다. 장 보러 풍산까지 나가는데도 꼬박 한나절이 걸렸다. 나룻배로 낙동강을 건너서 병산서원 앞을 지나 풍산들 들머리까지 산길을 걸었다. 허기도 지고 다리도 아파오는 그 어름에 장꾼들을 기다리는 주막, ‘쪽배기’가 자리 잡고 있다. 거기에 들러 쉬면서 더러는 술추렴도 했다. 아침 여덟 시에 마을을 떠나 정오 사이렌이 울리는 시각에 풍산장에 닿아 장보기를 마치고, 서둘러 되짚어 회정의 길에 올라도 마을에 도착하면 저물녘이 되기 일쑤였다. 옆 마을 하아리를 다녀오더라고 병산 허리를 가로지르는 벼룻길을 타야 했고, 어담을 가려도 산을 넘어야 했다. 인금 마을에서 하회 쪽으로 치우친 골짜기에는 월애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의성 김씨와 청송 심씨가 터를 잡아 6백 년을 살아온 이 마을에는, 일제강점기 심규화가 김국진, 태석과 함께 신간회 안동지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의 본거지로 삼은 월오헌 고택이 있다. 병산서원과 하회 마을 사이에는 유교문화길이 나 있다. 병산서원에서 출발한 길은 낙동강과 7백여m쯤 나란히 이어지는데, 쑤[藪]를 이루는 강섶의 습지가 앞을 가려 길에서 강의 물을 바라볼 수 없다. 습지에는 떡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르는 가운데 뽕나무, 미루나무, 시무나무 등이 그 틈에 끼어 자란다. 강섶을 벗어난 길은 꽃뫼[花山] 벼랑을 타고 5백m쯤 목책에 기대어 나 있다. 벼랑길은 나무로 된 계단을 내려오는 지점에서 끝나고, 완만한 경사를 따라 길은 다시 하회로 들어간다. 길섶에 설치한 안도현과 김남주의 시판을 지나서 거묵재 정자에 닿는다. 거묵재 정자에서 1.5km 정도 내리막길을 걸어가면, 하회 마을과 부용대를 뚜렷하게 바라다 볼 수 있는 곳에 도착한다. 이 유교문화길은 왕복 8km, 쉬엄쉬엄 걸어 두 시간 반쯤 걸린다. 병산을 지나서 저만치 월애 마을을 떨어뜨리고 지구의 껍질에 달라붙어 무장무장 흘러가던 낙동강은 하회 마을로 감돌아든다. 마침내 강은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섭리를 인간보다 명철하게 알아서 물태극산태극의 하회 마을을 자신의 곁에 지었다. 한편 마을의 건너편에다는 창검을 세우듯 부용대를 세워 놓았다. 보통 사람의 눈으로 봐도 경승⋅길지이다. 유네스코는 하회를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했다. 거기다가 1999년에는 엘리자베스 영국 여왕이 우리나라 전통문화 체험을 위해 특별히 하회 마을을 방문했다. 강의 역사役事가 이렇게 하회의 지형을 형성했다면, 인간의 역사役事는 하회의 문화를 이룩했다. 그 문화의 중심에서 서애 류성룡과 같은 선비가 났고, 그 가장자리쯤에 허 도령과 같은 민초가 존재했을 것이다. 그 문화는 충효당, 양진당 같은 전통 가옥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 하회별신굿탈놀이를 연행한 힘으로 작동한 것이다. 하회 마을 사람들은 물의 이치를 알아, 넌지시 그 물을 다스려 왔다. 사람들은 강과 어울려들 때 부용대 절벽에 줄 불을 내리고, 강에 배를 띄워 선유船遊했다. 그 참에 강도 흥에 겨워 너울너울 그 몸을 흔들어댔다. 양진당과 충효당에서 하회 선비의 삶을 들여다보았다면, 내친 발걸음으로 만송정 솔숲으로 들어가 낙동강과 멋지게 어울리는 소나무의 운치에 젖어봐야 한다. 그리고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만송정과 마주보고 선 부용대 언저리를 거닐어 볼 일이다. 부용대는 하회마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높이 64m의 절벽이다. 부용대 허리춤에는 옥연정사, 겸암정사, 화천서원이 자리 잡고 있다. 옥연정사는 류성룡이 『징비록』을 저술한 곳이고, 겸암정사는 류성룡의 맏형인 류운룡 세운 정사이며, 화천서원은 류운룡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서원이다. 하회 관광의 백미라면 국가무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하회별신굿탈놀이일 것이다. 회별신굿탈놀이는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하여 마을굿의 하나로 연희되는 탈춤으로 풍자와 해학이 넘친다. 물돌이동을 휘돌아 나온 낙동강은 서애의 종숙인 류중엄의 정자 파산정 밑을 깊게 흘러 광덕교에 이르러 여울을 탄다. 강은 유유히 흐르던 흐름을 벗어나 빨라진 유속이 돌을 갈아 여울은 비로소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그 유속도 습지를 거쳐 가는 동안 다시 느려지고, 강은 습지에 찢겨 그 틈을 비집고 흐른다. 광덕교를 사이에 두고 풍천면 도양리와 광덕리가 나뉜다. 도양리는 지대가 높은데, 광덕리는 낮다. 지금은 수리 시설이 잘 갖춰서 문제가 없으나, 과거에는 한 마을은 물이 모자라 애를 태우는데, 다른 한 마을은 물이 넘쳐 애를 태웠다. 도양리 북쪽 들 끝에는 검무산이 솟아 있다. 이 산의 형상이 서울의 북악산을 닮아 예사롭지 않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검무산을 뒤에 두고 경상북도 도청이 들어섰다. 어찌 보면, 낙동강과 검무산이 신도청 시대를 연 주역이 된다. 광덕리 남쪽에는 기산들이 넓게 형성돼 있다. 과거에는 뽕나무밭이던 이 들이 문자 그대로 상전벽해가 되어 지금은 비닐하우스가 들어서서 참외나 딸기를 재배하고 있다. 비닐하우스를 비껴난 노지에는 마와 우엉을 재배하고 있다. 광덕교 밑을 지난 낙동강은 구담까지 습지를 뚫고 나간다. 이 습지에 떡버드나무, 갈대 등이 들어차는 바람에 은모래 십 리 구담 백사장을 잃은 이곳 주민들은 구답 습지 제거를 주장해 왔다. 2011년에 4대강 유역 사업으로 구담 습지를 뜯어내고 구담보를 지었으나, 지금은 거의 복원되어 버드나무 등이 습지에 꽉 들어차고, 고라니, 뱀, 수생 조류들이 서식하고 있다. 이 구담보는 길이 423m, 높이 2m의 작은 보이다. 비록 작고 소박할망정 모양이 하회탈 눈썹을 닮은 유선형을 취함으로써 그 미관이 수려하고 날렵하다. 구담 마을은 예천군 지보면 암천리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갈리는 안동 서쪽 끝에 자리 잡은 마을로 순천 김씨와 광산 김씨 집성촌이다. 옛날엔 부산에서 올라온 소급배가 정박하던 나루터 마을이었다. 이 마을에서 서쪽으로 치우친 곳에는 구담교가 낙동강을 가로질러 기산들로 들어가는 길을 이어주고 있다. 안동 권역 97.4㎞를 일사불란하게 흘러 내려온 낙동강은 구담교에서 비로소 예천군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구담교 밑을 빠져나온 낙동강은 서쪽 멀리 의성군 다인의 비봉산 쪽으로 흘러간다.
낙동강의 발원지에서 대략 110여㎞를 흘러 봉화군 명호면 북곡리 광석나루에 다다른다. 낙동강은 그 긴 여정을 거쳐 온 힘으로 왼쪽 자락에 산 하나를 돌올하게 세워 두었으니, 영남의 소금강이란 일컫는 청량산이다. 나분들 앞 청량로에서 바라보면, 낙동강은 청량산을 옆구리에 끼고, 청량산은 낙동강을 품어 안는다. 낙동강이 있어 청량산이 생겼는지, 청량산이 존재하므로 낙동강이 존재한 것인지는 모를 일이나, 시원에 닿으면 이 둘은 하나였을 터이다. 그러므로 낙동강을 언급하면서 청량산을 빼놓을 수 없다. 청량산 청량사 청량산은 열두 봉우리를 거느리는데, 지형에 따라 이 봉우리들을 셋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능선을 따라 서쪽에서 동쪽으로 장인봉, 선학봉 자란봉, 연적봉, 탁필봉, 자소봉, 경일봉, 탁립봉이 늘어선 것이 그 첫 번째이다. 두 번째는 청량정사와 청량정사를 외호外護하듯 둘러싼 형세를 취한 향로봉, 연화봉, 금탑봉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이들 봉우리와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남쪽에 자리 잡은 축융봉이다. 청량산은 예로부터 불교의 자취가 산재한 산이어서 봉우리의 이름도 보살봉, 의상봉, 금탑봉, 연적봉, 대봉 등으로 불교 색채가 짙다. 풍기군수 주세붕이 불교의 흔적을 지우고 고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청량산은 금강산에 빗대어 소금강이라 일컫는 바와 같이 기암괴석이 천인절벽을 이루면서 자아내는 풍광이 장관을 이룬다. 시인 묵객은 이 산의 형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을까. 대개 이 산은 그 둘레가 백 리에 불과한데 봉우리와 산꼭대기, 층층이 중첩되어 모두 가파른 절벽이다. 가파른 절벽을 이고 안개와 남기嵐氣와 수목이 그림 같고 누각 같으니 참으로 조물주가 특별히 기량을 베푼 것이다. 주세붕이 「청량산록遊淸凉山錄」에서 묘사한 청량산의 모습이다. 자연은 형상대로 그렇게 존재할 뿐, 뜻을 지어 무엇을 의도하지 않는다. 강이 그러하고, 산이 그러하다. 청량산도 이와 같다. 이러한 자연이 인문학적인 범주 안으로 들어오면 의지를 드러내고 뜻과 정서가 자신 안에 깃들이게 한다. 이로써 자연은 역사를 이룬다. 같은 이치로 청량산에도 사람이 듦으로써 그 안에 역사가 존재한다. 후세에 전하는 기록과 사람의 흔적을 살펴보더라도 청량산에는 신라로부터 이어온 역사가 존재한다. 김생굴과 치원대가 그것이다. 지금에 이르러서도 청량산에는 청량정사와 청량사, 응진전, 산꾼의 집이 있다. 청량정사는 퇴계 이황이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던 곳이고,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천년 고찰로 약사여래불을 모신 유리보전이 유명하다. 산꾼의 집은 옛 주인이 바뀌어 지금은 시인이 깃들어 산다. 주세붕을 시작으로 권호문, 허목, 김득연, 이상룡 등 많은 이들이 청량산을 유람한 견문을 글로 남겼다. 이들이 남긴 글에는 청량산의 경치를 감상하는 가운데 의취(意趣)와 정서를 끌어내어 격물치지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였고, 아울러 강호 한정을 노래했다. 그리고 이 청량산에서 벗과 어울려 취흥에 젖어 들기도 했다. 퇴계 이황은 청량산을 오가산吾家山이라고 할 만큼 사랑하여 50여 편의 시를 남길 정도인데, 퇴계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청량산가」에서 청량산을 무릉도원으로 인식했다는 점이 자못 흥미롭다. 이렇게 산이 사람을 품으면서 산은 역사를 이루어낸 것이다. 청량산은 산행지로도 이름난 곳이라서 등산객이 사철 분빈다. 그에 따라 등산로도 다섯 개 코스로 개발해 놓았는데, 입석, 청량사, 뒷실고개, 하늘다리, 장인봉, 청량폭포로 이어지는 코스가 선호도가 높다. 청량사를 관람하고, 하늘다리를 건너면서 아찔한 쾌감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산행을 마치고 입석 방면으로 하산하면 거기서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2.6㎞쯤 나온 지점에서 낙동강을 만나고, 이어서 나분들 마을에 닿는다. 그리고 미슐랭 그린가이드가 한국에서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한 국도 35선에 올라서게 된다. 이 길은 활처럼 휘어 낙동강과 나란히 군계(郡界)를 넘어 도산면 가송리 삼거리에 이른다. 북쪽에서 흘러내린 낙동강은 청량교 밑을 빠져나오는 찰나에 깎아지른 학소대 절벽을 아슬아슬하게 비껴 여울을 타고 빠르게 흐른다. 겨울이면 바위틈으로 새 나온 물이 얼어 학소대는 빙폭을 이루어 장관을 연출하는데, 여름이면 여울을 이룬 낙동강의 유속이 빨라 래프팅하기에 좋다. 낙동강과 고산정 가송리 삼거리에서 방향을 왼쪽을 잡아가면, 쏘두들 마을을 거쳐 고산정과 농암종택에 닿는다. 고산정은 쏘두들 마을에서 낙동강을 건너 맞은편, 하늘에서 곧장 내리꽂히는 내병산 아래 자리 잡았다. 마당 밖에다 비스듬히 소나무를 거느리고 선 고산정의 자태가 고독한 군자 같다. 이 정자 주인의 성정性情이 아마 이러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그 주인은 퇴계의 제자로 봉화 현감을 지낸 성성재 금난수이다. 고산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집인데, 3m가량의 축대를 쌓아 대지를 조성한 후, 얕은 기단 위에 자연석 덤벙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다. 가운데 놓인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꾸미고, 전면과 측면에 계자난간을 둘렀다.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뒤로는 취병산이 병풍처럼 에워싼 이 고산정은 예부터 예안 지역의 이름난 명승이었다. 자연과 어우러진 경관도 절경이려니와 여름이면 상사화를, 가을이면 노랗게 익어가는 탱자를 이 정자 마당에서 보는 운치도 있다. 퇴계 이황도 일찍이 여러 차례 제자들과 함께 방문하여 시를 짓고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이때 퇴계가 지어 널리 알려진 시로, 청량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성성재에게 남긴 「서고산벽書孤山壁」이 있다. 고산정 언저리에 이르러 물은 바위를 썰고 갈아 하나를 둘로 나눠 가송협이란 협곡을 지었다. 그 나뉜 것이 고산이고 취병산이다. 물은 석벽을 둘로 갈라 높이 솟구치도록 해 놓고 자신은 낮게 깔려 유유히 그사이를 뚫고 흘러간다. 물은 고산정을 자신의 품에 들여놓기 위해 취병산 아래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운데, 여울목에 곧장 이르러서는 딱딱하게 굳은 채로 남으로 빠르게 내닫는다. 이쯤에서 예던길이 시작된다. 가사리를 지난 낙동강은 여울을 타고 직선으로 흘러 앞을 가로막고 나서는 절벽을 날카롭게 깎아내고, 절벽 맞은편에다가는 이끌고 온 부유물을 쌓았다. 깎인 곳은 깊은 물웅덩이를 이루고, 쌓인 곳은 모래톱을 이룬다. 달빛이 밝게 비췬다 해서 이 물웅덩이를 가리켜 월명담이라 하는데, 이 소에는 용이 산다는 전설이 있다. 월명담에서 한 굽이 휘돌아 나가면, 저만치 강의 북쪽 개활지에 늘어선 농암종택과 그 부속 건물들과 맞닥뜨린다. 농암종택은 조선 중종 때 문신이며, 학자인 농암 이현보의 생가이다. 종택 안에는 본채가 있고, 서쪽으로 치우친 곳에 궁구당이 들어서 있다. 종택 주변에는 농암 사당을 비롯하여 분강서원, 애일당, 명농당, 농암 바위가 자리 잡고 있는데, 수몰되면서 분천에서 옮긴 것이다. 현재 종손이 민박을 운영하고 있어, 이 종택은 청량산 일대를 둘러보고, 예던길을 걸으며 쉬어갈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낙동강은 농암종택 맞은편 절벽에 바투 붙어 내닫다가 다시 건너편 절벽에 부딪히며, 흐름을 크게 바꾸어 남동쪽으로 쭉 뻗어 단천리 끝단에 다다른다. 그 사이에 학소대, 한속담, 벽력암, 경암, 미천장담이 차례로 자리 잡고, 몇 년 전에는 이 부근에서 공룡 발자국이 발견됨으로써 자연사적으로 의미 있는 곳이 되었다. 퇴계 이황은 청량산으로 들어가는 길에 이곳의 빼어난 경치를 시로 읊어 남겼다. 미천장담을 벗어난 낙동강은 예던길 아래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둥글게 휘어나가, 단천리를 가로질러 단사협에 이른다. 농암종택에서 미천장담에 이르는 사이에는 길이 끊겨 단천리로 갈 수 없다. 부득이 단천리 쪽의 예던길로 가자면, 농암 종택에서 돌아 나와 온혜리에서 백운로로 들어가야 한다. 이 길을 약 8㎞를 밟아 들어간 곳에서 만난 단천교가 예던길 들머리이다. 이 지점에서 예던길은 둘로 나뉜다. 하나는 단천교를 건너 가재미골, 장구목, 월명담을 거쳐 월명담 가사리에 이르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단천교에서 곧바로 나아가 미천장담, 학소대, 농암종택, 올미재를 넘어 쏘두들에 이르는 길이다. 단천교에서 곧바로 난 예던길은 내왕이 쉬운 곳까지의 거리는 약 5㎞이다. 이 길은 시멘트 포장로인데, 낙동강을 거슬러 가는 코스이다. 얼마간은 낙동강에 붙어 가다가 길이 오르막을 타기 시작하면서 강은 길을 비껴나간다. 오르막을 오르는 길섶에 팔각정과 전망대가 나선다. 전망대에 올라 전면을 바라보노라니, 하늘빛과 산빛을 받아 안고 흐르는 낙동강이 손에 잡힐 듯하고, 청량산 축융봉이 이마에 와서 부딪힌다. 전망대 주변에는 퇴계 이황의 시, 「경암」, 「한속담」, 「미천장담」을 새긴 빗돌이 있어, 고인(古人)의 가던 길을 가늠해 볼 기회도 얻는다. 장구목으로 이어지는 예던길의 일부 구간에도 목책 탐방로와 전망대를 설치해 놓았다. 이 전망대는 학소대, 경암, 미천장담을 조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티끌 세상에 심신이 찌들었다면, 서둘러 신들매를 고쳐 신고 청량산 하늘다리를 아찔하게 건너볼 일이고, 고산정 마당에 서서 낙동강에 어리어 비취는 취병의 비췻빛을 호젓이 감상한 후, 예던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걸어 꿈속으로 들어가 볼 일이다.
연재를 시작하며 물은 강을 이루고 흐르면서 인간의 삶을 직접적으로, 혹은 구체적으로 장악하고 간섭한다. 따라서 인간은 물의 그릇인 강에 기대어 살아온 것이다. 곧 인간은 강에 의지하여 생존해 왔고, 그러는 동안 역사를 이루고 문화를 형성하였다. 여기에 강의 중요성이 존재한다. 우리가 기대어 살아가는 낙동강의 생태와 경관, 그리고 이 강섶에서 형성된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는 연재물을 기획한 것도 이러한 까닭에서이다. 이번 연재는 안동 권역 낙동강에 한정함을 밝혀둔다. 낙동강은 강원도 함백산에서 발원하여 521.5㎞를 흘러 남해로 흘러 들어가는 영남의 젖줄이다. 안동 권역에 속하는 낙동강은 도산면 가송리에서 북에서 남으로 곡류하다가 안동댐을 지나 반변천을 만나는 지점에서 방향을 서쪽으로 틀어 풍천면 구담리까지 흘러간다. 그 물길은 도산면, 예안면, 녹전면, 와룡면, 안동 시내, 서후면, 풍산읍, 풍천면을 관통하면서 토계천, 동계천, 구계천, 반변천, 송야천 등을 받아들이며, 도상圖上으로 대략 97.4㎞를 이어 간다. 강의 주요 시설로 1976년에 준공한 안동댐이 있고, 중앙선이 지나가는 안동철교와 중앙고속도로에 지나가는 서안동대교를 비롯하여 24개 다리가 있다. 이들 다리에는 목책교인 월영교와 두 개의 잠수교도 포함된다. 이 안동 권역의 낙동강은 편마암과 중생층中生層 사이의 구조선을 따라 유로流路를 취하는 천정천天井川으로 청량산을 지나 예던길 아래로 흘러내린다. 강의 상류는 가송협, 단사협 등의 협곡을 따라 사행하다가 원촌과 부포에 이르러서는 그 품에 꽤 넓은 범람원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안동댐 건설로 도산면 원천리가 만수 지역에 들어감으로써 이 범람원은 수몰되고 말았다. 유역에 형성된 주요 평야로는 안동분지와 충적평야를 이루는 풍산평야가 있다. 그리고 낙동강 상류에는 산협을 끼고 휘돌아 흐르는 감입곡류嵌入曲流가 산재한다. 그 대표적인 곳이 하회마을이다. 이러한 지형상의 특징으로 말미암아 안동 권역의 낙동강은 아름다운 경관으로 그 이름이 높다. 일찍이 퇴계 이황이 오천에서 청량산에 이르는 아홉 곳의 경치를 읊은 「陶山九曲」을 보더라도 고산정, 단사협, 갈선대 등 이 일대가 승경임을 짐작할 수 있다. 도산서원 주변의 경관도 범상치 않다. 병산서원 만대루에서 앞으로 내다보는 경치, 부용대에서 안존하게 내려다보이는 하회마을의 경치 역시 인상적이다. 그리고 안동댐과 월영교, 임청각, 영호루는 배우고 느끼고 즐길 수 있는 테마 기행지로 적합할 것이다. 낙동강 상류의 생태계는 안동댐 건설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댐 주변의 수몰 지역에는 백로, 왜가리, 고니, 청둥오리들이 서식한다. 안동댐 모래섬에는 2013년부터 바닷새의 일종인 쇠제비갈매기가 날아와 깃을 접었다. 낙동강 최상류인 태백에서 안동까지의 지류와 본류에 사는 토착어종은 칼납자루, 참몰개, 쉬리, 긴몰개, 돌마자, 꺽지, 수수미꾸리 등 11종에 이르고, 여기에 외래어종인 블루길이나 배스 등이 더불어 살고 있다. 문제는 댐 건설 후에 들어온 이들 외래어종 때문에 토착어종이 많이 감소하는 일이다. 안동댐이 건설되기 전에는 은어가 바다에서 많이 올라왔으나, 물길 막히면서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댐 안에서 일생을 마치는 육봉은어가 안동호에 서식하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낙동강 상류에는 홍수에 의한 파괴와 토양 특성의 영향으로 여뀌, 쇠뜨기 등이 산재한다. 홍수가 적은 해나 갈수기에는 일년생 초본류가 일시적으로 번성하기도 한다. 댐 건설로 하류에 습지가 새로 생겨난 곳이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구담 습지와 검암 습지이다. 습지에는 버드나무, 갈대 등의 식물과 고라니, 수달 등의 동물이 서식한다.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안동호에는 여름이면 녹조류가 댐 상류를 뒤덮는 일이 잦다. 그리고 상류에서 유입되는 중금속으로 호수의 오염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인류는 일찍부터 강에 의지하여 살면서 문명을 일으켜 왔다. 그러므로 인간의 역사와 문화는 강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발전해 왔다. 낙동강도 예외가 아니다. 안동에서 사람이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것은 출토된 유적, 유물로 봐서는 적어도 구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구석기 시대부터 낙동강 강가에 움집을 짓고, 주먹도끼, 찍개, 몸돌 등을 사용하며 살았다. 이를 증명해 주는 것이 마애선사유적이다. 선사시대에서 역사 시대로 넘어오면서 낙동강이 안동을 한반도 역사와 문화의 한 거점으로 만들었다. 삼한 시대에 이미 창녕국이란 부족 국가를 세웠으며, 신라 시대에는 고타야군이 되었다가 고창군으로 개칭하였다. 안동은 고려 시대에 이르러 고려 건국의 결정적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크게 흥하여 대도호부에까지 이르렀다. 조선 시대로 들어와서는 퇴계 이황과 같은 걸출한 인물이 나옴으로써 영남 학맥의 중심지가 되었고,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의 성지가 되었다. 오늘날, 안동은 유교 문화의 원형을 간직한 추로지향鄒魯之鄕이며, 전통과 예절이 살아 숨 쉬는 고장으로서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의 지위를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안동에서 배출된 인물을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우선 우뚝하게 나서는 인물들이 고려의 개국공신 성주 김선평, 권행, 장길 등 삼태사이다. 김방경 장군과 역동 우탁도 고려가 낳은 안동의 인물이다. 임청각 군자정 조선 시대에는 ‘조선 인물의 반은 영남에서 났고, 영남 인물의 반은 안동에서 났다.’라고 하여 ‘인다人多 안동’으로 불렸다. 낙동강 강섶에서 태어난 인재들에 국한해서 그 대강을 살펴보자. 어부사를 통해 강호가도를 형성한 농암 이현보는 조선을 대표하는 문인이었다. 동방의 주자로 일컬어지는 퇴계 이황은 성리학으로 퇴계학을 정립하여 퇴계 학맥의 조종祖宗의 자리에 올랐다. 그의 문하로 우뚝 솟은 학봉 김성일과 서애 류성룡을 비롯하여 월천 조목, 성성재 금난수, 오천 군자리의 칠 군자, 유일재 김언기 등이 후세에 이름을 남겼다. 학문과 더불어 살펴봐야 하는 것은 문학이다. 우탁은 고려 시대 문인으로 ‘탄로가’, ‘백발가’를 남겨 시조문학의 장을 열었다. 그 뒤를 이어 농암 이현보가 ‘어부사’를 지어 강호가도를 창시하면서 ‘귀거래사’, ‘농암가’, ‘효빈가’를 남겼으며, 그 어머니 권씨 부인은 ‘선반가’를 지었다. 그의 아들 이숙량도 ‘분천강호가’를 남겼다. 퇴계 이황은 ‘도산십이곡’을 지어 자연에 동화된 삶과 학문에의 정진을 읊었다. 한편 안동에는 많은 내방가사가 전해지고 있거니와, 이 내방가사는 당시 여인들의 삶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지표가 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민족시인 육사 이원록이 있다. 그는 독립투쟁에 일생을 바치는 한편 시로써 일제에 항거하며 광복을 예언한 행동하는 시인이었다. 일제의 침탈로 국권을 빼앗기자 전국적으로 독립운동이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났다. 안동 권역 낙동강을 낀 마을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안동의 임청각, 도산의 하계, 예안의 부포, 풍천의 가일과 오미가 그 대표적인 곳이다.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임청각 주인 석주 이상룡, 하계의 향산 이만도, 부포의 이동하와 이선호, 가일의 권오설, 오미의 김재봉과 김지섭이 이들 마을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인물들이다. 한편 일제에 저항하다가 북경 감옥에서 순국한 원촌의 육사 이원록이 있다. 그리고 안동 장터, 예안 장터, 풍산 장터에서 일어난 3‧1 만세 운동도 독립 운동사에 남을 큰 사건이었다. 오랜 세월 낙동강은 사람들에게 터를 내주어 문화를 이루며 살아가게 했다. 작은 터에는 작은 마을을 허락했고, 넓은 터에는 큰 마을을 이루어 물산의 집산을 도왔다. 일테면 안동, 풍산, 수몰 전의 예안과 같은 큰 마을에는 장시를 열게 한 것이 그 예이다. 그러는 가운데 마을의 문화, 시장 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하회 탈춤 낙동강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육로가 발달하기 전에는 중요한 교통로로 이용되었다. 낙동강 수로는 예안 석빙고에까지 닿았다. 그리고 육로가 닿은 강가에는 나루터가 형성되었고, 그 곁에다는 적어도 주막 하나쯤을 마련해 두었다. 부포 나루, 주진 나루, 개목 나루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강기슭에는 강학을 위해 서원이 문을 열고, 시인 묵객들이 강호 한정을 읊고 호연하게 풍류‧교유하던 누각과 정자가 있다. 도산서원, 분강서원. 임천서원, 병산서원, 화천서원이 그 강학의 공간이었고, 고산정, 군자정, 귀래정, 영호루, 낙암정, 만대루, 파산정이 그 시회와 풍류의 공간이었다. 한편 강마을을 중심으로 전통 민속 문화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안동 권역의 낙동강에서 일어난 전통 민속 문화로 대표적인 것은 하회별신굿탈놀이와 하회선유줄불놀이일 것이다. 이 밖에도 병산탈춤이 있고, 세력이 크다 싶은 마을에서는 대동굿을 열었다. 어쨌거나 안동 권역의 낙동강은 그 강섶에다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 문화유산 셋을 우뚝하게 세워 놓은 뒤, 영남의 한복판을 우렁우렁 가로질러 대양으로 흘러 들어간다. 강은 자연의 운용에 따라 넘치기도 하고, 비기도 한다. 강이 지나치게 넘치고 빌 때, 그 강에다 목숨을 의탁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두려움에 떤다. 그래서 강은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때로는 서원誓願하고, 때로는 몸과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낙동강으로 나가서 맑은 물을 길어 정화수로 쓰기도 했다. 물은 이처럼 정화수로 쓰이는 신성한 존재이기도 한 것이다. 낙동강도 그러하다.
지난 1일 오후 2시 포항시 남구 동해면 상정리 동양산업(주)에서 한국인 최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한국인의 표상, 최준 선생의 흉상제막식이 있었다. 최준 선생 흉상건립추진준비위원회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코로나19가 사회적 문제가 됨에 따라 외부인사를 초청하지 않고 조촐하게 진행했다. 경주 최 부자로 알려진 최준 선생은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원칙을 세우고 소작인에게 8할을 받던 소작료를 1600년대부터 절반만 받는 등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상으로 재평가 받고 있는 인물이다. 해방 직후에는 독립운동가인 故 최준 선생이 전 재산을 육영사업에 쓰기로 결심하고 선산과 만석지기 토지와 살고 있던 집까지 모조리 학교사업에 희사했다.
4대강사업의 하나로 지난 2016년 완공된 영주댐에 대한 환경단체의 댐의 안전과 수질 오염 관련 문제 제기가 지난달 내린 폭우로 일정 부분 일단락될 것으로 보인다. 40여 일 계속해서 내린 비로 최대 담수량에 육박하는 저수위 확인을 통해 논란이 됐던 댐의 안전성을 부분적으로 검증할 수 있게 됐으며, 담수량 증가로 오염원의 희석 효과 또한 기대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영주댐 준공 이전부터 환경 문제를 거론하며 댐 건설을 방해해 왔던 일부 환경단체들은 준공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1조1천여 억원을 들여 완공된 댐에 대한 비판과 함께 철거를 주장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009년 4대강사업의 하나로 추진되어 온 영주댐은 지금까지 이명박 정권에 대한 비난 여론의 틈바구니에 끼워져 준공과 효용성 검토 이전부터 평가절하(平價切下)돼 왔다. 누수로 인한 안전성 문제 제기로 담수가 이뤄지지 않았고, 수위의 10%에 불과한 상황 가운데 수질 오염에 대한 비난이 빗발쳤기 때문이다. 2016년 준공 이후 담수율 10%대에 머물던 영주댐은 지난달 내린 비로 만수위(164m)에 육박하는 78%(161m)를 담수한 후 폭우가 계속 이어지자 지난달 2일 최초 방류를 시작했다. 이렇듯 신중해야 결정된 국토개발이란 국가의 중대사를 정권 교체라는 이유로 단 한 순간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일은 다시 있어서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권은 언젠가 바뀔 수 있지만, 이 땅을 지키고 살아야 할 국민의 삶은 여전히 계속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영주댐 건설은 이명박 정권이 처음 시도한 국토개발 정책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 집권기인 지난 1999년 영주댐 건설 정책이 추진돼 ‘예비 타당성’ 조사까지 거쳤으며, 이어 노무현 대통령 집권기인 2004년엔 한 걸음 더 나아가 ‘타당성조사’까지 진행됐던 개발사업이다. 두 전직 대통령이 댐 건설을 검토했을 정도로 중대한 물관리종합대책의 하나였으며, 지난 1990년대 초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으로 낙동강의 중요성 부각과 함께 강 상류에 설치될 영주댐 건설 사업은 두 전직 대통령도 추진을 망설일 정도로 많은 예산이 소요되는 주요 국토개발사업이었다. 이렇듯 영주댐이 이명박 대통령에 의해 일순간 계획되고 추진된 사업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 반대론자들은 지금껏 이명박 정권이 자연을 파괴하고 훼손했다라는 비판을 이어오고 있다. ◇ 영주댐 건설과 안전성 논란 다목적댐인 영주댐은 내성천과 낙동강이 모이는 합류점으로부터 약 55.6㎞ 상류에 위치해 있으며 홍수방지와 수자원확보 등을 주목적으로 건설됐다. 댐의 유역면적은 500㎢, 길이 400m, 높이 55.5m, 연평균 유입량 3억 1천660만㎥, 유효 저수 용량 1억6천40만㎥, 총저수용량 1억8천110만㎥ 규모이다. 4대강사업이 2009년 10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이뤄졌지만, 영주댐(총사업비 1조1천30억원)은 이로부터도 4년이 지난 2016년 10월25일에서야 마무리됐다. 댐 준공 후에도 환경단체들의 균열과 기울어짐, 지하 물방울 맺힘 등의 안전 시비에 휘말려 담수하지 못하다가 2019년 9월 환경부의 승인을 얻어 담수를 시작했다. 환경부가 건축물 안전진단과 환경부의 정밀진단, 모니터링을 거쳐 최종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담수 승인 이후에도 한동안 강수량 부족으로 최대 담수량의 16% 이상을 담수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달을 전후해 40여 일 동안 폭우가 이어지자 최대 담수율(1억8천만톤)의 78%에 이르는 1억4천만톤(8월5일)의 수량을 기록했다. 이에 영주댐관리소는 이어지는 폭우를 고려해 수문을 열고 초당 400톤의 물을 방류, 현재 60%의 수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번 담수와 방류로 댐의 안전성이 확인한 셈이며, 또한 낙동강 하류로 급히 흘러갈 많은 수량을 일시 차단·저장해 댐의 홍수방지 기능을 확실히 입증할 수 있었다. ◇ 녹조가 영주댐 오염의 증거라고? 생태계에서 논란이 되는 녹조 문제는 강이나 호수에 남조류가 과다하게 번성하여 물의 색깔이 짙은 녹색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녹조 현상은 식물성 플랑크톤인 남조류가 수온 상승(20~30도)과 댐 유입수의 부(富)영양화, 일조량의 증가라는 조건들이 갖춰질 때 번성하는 자연 현상으로 3가지 요건 중 단 한가지라도 부족하면 이내 사라지고 만다. 녹조는 미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며 특히 날씨가 선선한 북유럽의 노르웨이, 스코틀랜드와 러시아, 북미의 캐나다, 남미의 칠레 등도 녹조 문제 해결에 곤란을 겪을 정도로 전 세계가 겪는 일반적인 자연 현상이다. 따라서 일조량과 수온 변화는 인력으로 감당할 수 없지만, 강과 하천에 유입되는 질소와 인, 부영양화 물질의 감소에는 민관이 힘을 합쳐 대책 수립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네 반해 우리나라의 일부 환경론자들은 7~8월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 녹조가 수질 관리 실패로 발생하는 환경오염의 결과물로 인식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이런 환경론자들이 4대강 공사 이전에는 녹조가 없었다고 주장하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과거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강에서 녹조가 발생했고 이것이 문제가 돼 각종 언론에 등장한 기록들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1992년 낙동강 녹조 7일 이상 지속 ▲1995년 낙동강 북한강을 시작으로 녹조 전국 확산 ▲1996년 주로 낙동강에서 녹조 발생 ▲1997년 4월부터 10월까지 전국 녹조 발생 ▲2000년 기온상승에 따라 4대강 수질 악화 ▲2001년 전국 댐으로 녹조 확산 ▲2003년 안동댐에서 녹조 발생 ▲2004년 태화강을 시작으로 낙동강 녹조 발생 ▲2007년 낙동강, 태화강에서 녹조 발생 ▲2009년 대청호, 남강호, 사연댐에서 녹조 발생 ▲2010년 금강에서 녹조 발생 등 전국의 보와 댐에서 발생한 녹조 관련 보도만을 간략하게 정리해도 이렇게 많다. 이렇듯 우리나라의 녹조는 4대강사업 이전에도 여름철 장마가 길게 이어지는 몇 해를 제외하고 매년 댐과 하천에 발생했다. ◇ 영주댐은 실패한 국토개발 정책인가? 지난 2007년 3월28일 모 언론의 ‘정부가 지난 13년 동안 28조원을 쏟아부었건만 4대강 수질 더 나빠졌다’란 보도에서 알 수 있듯이 이전 3개 정권(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에서의 4대강 물사업도 결국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반해 훨씬 더 적은 예산을 사용한 4대강사업은 다른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영주댐을 비롯한 4대강 ‘댐과 보 건설, 농업용 저수지 둑 높임으로 늘어난 저수량’(4대강 사업으로 확보한 전체 물의 총량 11억7천만)을 비교해보면, 낙동강(9억1천만)>금강(1억1천만),영산강(1억1천만)>한강(4천만) 순으로 나타난다. 이를 살펴보면 4대강사업의 가장 큰 혜택을 받은 곳은 영주댐을 포함한 낙동강 유역이다. 낙동강 상류에 위치한 영주댐은 최대 1억8천만톤의 담수 능력을 통한 치수(治水) 기능은 물론 생활용수와 농업(공업)용수 등으로 활용하는 이수(利水)기능, 생태 보전과 위락 기능, 배수 정화 기능, 발전 기능 등을 갖추고 있다. 영주댐은 낙동강으로 유입될 강 상류의 각종 부유 물질과 쓰레기, 오염물질을 사전 차단, 수거와 흡착, 내부 자정작용을 통해 정화함으로써 수질 개선 효과까지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렇듯 영주댐을 통해 낙동강 유역의 1천300만 지역민들은 풍부한 유량 확보는 물론 수위 조절을 통한 홍수 조절, 비상 용수 및 방재 용수의 안정적 공급, 수력발전, 환경개선, 수변공간 활용을 통한 정서적 안정감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게 됐다. ◇ 영주댐의 향후 활용 방안 각 도시와 나라를 잇는 유럽의 많은 강과 미국의 강들이 보유한 많은 보와 댐을 살펴보더라도 선진국들은 강을 도시와 국가 발전의 주요한 매개체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환경론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잘 개발하고 관리·활용해 지역 및 국가 발전을 이뤄내고 있다. 영주댐도 수려한 경북 북부지역의 자연환경과 함께 주변지역의 관광 위락시설들을 활용, 많은 관광객이 찾는 휴식공간으로 개발함은 물론 여름 한 철 발생하는 녹조 등의 활용 방안 모색도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녹조를 활용한 고급 화장품과 비료 생산, 바이오 오일, 바이오 에너지, 바이오 플라스틱 제조 등의 원료로 활용, 자연친화적 제품까지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녹조 비료는 일반적으로 생산되는 비료들에 비해 토양에 오랫동안 남아 효용성이 더욱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덜 붐비는 숨은 명소부터, 혼자서 즐기는 트레킹 코스까지 거리두기를 실천할 수 있는 숨은 여행지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코로나19 예방과 방역이 일상화된 요즘, 접촉을 뜻하는 영어 '콘택트(contact)'에 반대를 뜻하는 '언(un)'을 붙인 '언택트'가 화두인 가운데 타인과의 접촉을 줄이면서 여행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영주시의 관광지가 주목받고 있다. 영주는 전통 문화자원을 간직하고 있는 것은 물론, 소백산 줄기에서 비롯된 자연적 특성 때문에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는 청정과 힐링 여행지의 최적지로, 시는 힐링, 자연, 걷기, 캠핑, 사진을 주제로 '언택트 관광 Best 5'를 선정해 비대면 관광수요에 응답하고 있다. 영주는 전국에서 최초로 힐링특구로 지정된 명실상부한 힐링1번지다. 영주는 유교문화의 중심지답게 우수한 문화자원을 간직하고 있으며 소백산 줄기에서 비롯된 자연적 특성은 지친 현대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스트레스에 찌든 몸을 정화시키기에 제격이다. 시는 이런 지역적 특성을 살려 첫 번째 언택트 관광 '힐링여행'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부석사와 소수서원, 그리고 국립산림치유원 다스림을 선정했다.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고찰 부석사는 국보, 보물 등을 간직한 명찰로 특히 무량수전 앞에서 내려다보는 석양은 대한민국 국보0호라 불리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 소수서원은 조선시대 인재의 도량으로, 인근에 위치한 선비촌과 함께 선비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국립산림치유원 다스림은 숲을 활용하여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고,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회복시키는 산림치유의 공간으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두 번째 '자연여행'으로 죽계구곡, 금선정, 희방계곡을 선정했다. 지리산과 설악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는 소백산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죽계구곡은 퇴계 이황이 찬사를 보냈던 비경 중 비경으로 안축이 읊었던 죽계별곡의 무대이자 조선 중기 주세붕 군수가 자연을 즐기며 시를 읊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기암괴석과 노송이 빼곡하게 들어선 금선계곡에 은밀하게 자리 잡은 금선정과 폭포가 한 눈에 보이는 희방계곡은 소백산이 감춰둔 숨겨진 명소다. 숲에서의 하룻밤을 선사하는 '캠핑여행'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영주호 오토캠핑장과 솔향기마을, 무쇠달 마을을 추천했다. 요즘 영주를 찾는 캠핑족들의 핫 플레이스는 단연 영주호 오토캠핑장으로, 오토캠핑장과 숲속 캠핑장, 카라반, 캐빈하우스, 오토캠핑카와 함께 취사장, 샤워시설, 화장실, 야외무대, 놀이터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캠핑초보나 편하게 자연을 느끼고 싶은 이들이라면 솔향기 체험마을과 자연과 함께하는 운치를 자랑하는 수철리 무쇠달 마을을 이용하면 된다. '걷기여행'에는 죽령옛길, 소백산 생태탐방원, 이몽룡 둘레길을 선정했다. 소백산에 위치한 죽령옛길은 옛 선비들의 과거길로 이용되었던 곳으로, 선비의 마음가짐을 느껴볼 수 있는 유명한 트레킹 코스다. 죽령옛길보다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애민사상가 정도전과 청백리 이몽룡을 스토리텔링한 이몽룡 둘레길과 교육과 연수, 체험까지 함께 할 수 있는 소백산생태탐방원도 영주를 대표하는 걷기여행 길이다. 요즘 여행의 트랜드 중 하나는 단연 '사진여행'으로, 시는 지역의 사진여행 명소로 무섬마을과 단산면 코스모스길, 영주호 용마루 공원과 출렁다리를 소개했다. 무섬마을은 고택과 정자들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 곳으로 30여 년 전까지 마을과 외부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로 이용되었던 외나무다리 또한 예전 모습 그대로 만나볼 수 있어 각종 영화와 드라마와 광고의 배경이 될 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단산면 코스모스길과 영주호 용마루 공원, 출렁다리는 새로운 관광명소이자 사진촬영 명소로 점차 입소문 나고 있다. 영주시는 지역 외 거주자가 2박 3일 이상 영주 관광 신청한 후 SNS, 블로그, 여행카페 등 온라인매체에 나 신문, 방송 등 오프라인 매체에 여행후기를 기고할 경우 숙박비 체험비를 지원하는 비긴어게인 영주 이벤트를 실시하는 등 지역 여행을 장려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함께 코로나19 대응능력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가운데 대한민국의 전통문화를 간직한 지역의 아름다운 관광지를 소개해 해외 홍보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언택트 관광' 트랜드에 맞춰 관광전략을 새롭게 수립하고, 홍보영상을 제작해 미디어와 SNS등을 통해 집중적으로 홍보해 나갈 계획이다. 장욱현 영주시장은 "집콕과 거리두기가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 타인과 접촉을 줄이면서 여행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새로운 여행지를 찾는 사람들에게 뉴노멀 시대 안성맞춤인 영주의 언택트 힐링 여행지가 만족을 드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포항시민 지진소송은 인지대 납입문제로 외상소송이 안되면 인지대 피고대납 재판을 해달라는 시민원고 대리인 변호사와 지진손해는 피고들 책임이 아니라는 피고 (주)넥스지오 대리 변호사들 간의 소송비용(인지대, 송달료 등) 관련 금전지급가처분 사건으로 제2라운드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포항법원의 현명한 솔로몬의 재판만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포항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법무법인 광복(전 법무법인 광화)의 이재훈 고문은 경북 상주, 조원룡 대표는 포항 강구 출신이고, 2017.11.15. 포항지진으로 난리가 났을 때, 법조인으로서 고향 분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으로 법률지식 기부를 하자고 의견을 모으고 손해배상소송 전문 이재훈 고문은 피해현장 대성아파트, 대웅파크 등의 지하 침하현상의 원인을 찾아 특수지형구조인 달전리 주상절리, 천곡사 계곡, 금광리의 지반침하, 이동 아파트단지 입구 좌측언덕에 노출된 떡돌은 손힘으로 부서지고, 지질관련 책자에 약 400만 년 전까지 포항지역을 포함한 동해지역이 심해가 아닌 강물과 모래, 자갈이 흘러들어 오는 분지였다가 바다로 변하여 이룬 땅이 융기하여 육지를 이룬 곳이어서 포항 지하는 신생대 제3기층 퇴적암, 연성암층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지열발전 입지를 포항으로 한 것은 입지선정에서 인재(人災)를 자초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고 한다. 소송과정에서 지질조사를 하였다는 피고 대리인 주장은 허위사실의 주장을 내세워 배상책임을 면하려 하는 것으로 그 정도가 지나치면 피고에 의한 소송사기가 될 수도 있다고 시민측 광복 변호사는 힘주어 주장한다.
푸른포항21추진협의회 연규식 대표는 2016년 3월24일 포항시장으로부터 위촉받아 2020년 6월30일 포항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 상임대표로 왕성한 활동을 펼친 후 지난달 신임 공동대표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했다. 연규식 대표를 만나 그동안의 활동 공적을 들어본다. △정체성을 찾아 2016년 위촉을 받아 푸른포항21추진협의회를 접했을 당시, 단순히 환경실천단체로만 인식했다. 1987년 유엔 환경과 개발에 관한 세계위원회는 '지속가능한 개발'에 관한 브란트란트보고서를 제출했다. 이것은 1992년 브라질 리우선언에서 'Agenda21' 수립을 권고했으며 1994년 제3차 지구환경회의에서 Local Agenda21을 채택하면서 지구환경보전을 위해 지방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언급하게 됐다. 이 정신을 받아 각 국가에서는 의제21을 설립하게 됐으며 포항은 1997년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1998년 3월24일 창립총회를 개최하게 됐다. 이후 포항의 의제21은 푸른포항21추진협의회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그동안 의제 선포식을 개최하는 등 여러 방향의 노력을 해왔으나 어느 순간 초창기의 정체성과 방향을 잃고 단순히 자생단체의 형태로 각 지역위원회별 환경정화활동과 행정의 인원동원으로 활동하는 단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의제활동은 지방정부의 의제, 즉 그 지역의 문제를 찾아 조사하고 시민들이 논의해 정책반영을 위한 의견을 제시하는 등 행정과의 거버넌스로 협력해 나가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분과별 조직을 지역리더들과 활동가들로 다양하게 구성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고 다양한 의제를 찾아내고 이행과제를 만들어 내고 실천에 관한 경과와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해 나가며 시정의 발전을 돕도록 하는 것이다. 십수년 방향을 잃어버린 푸른포항21추진협의회를 맡아 연규식 대표는 광역과 전국과의 유대관계를 활성화 시키면서 정체성을 정립해 나가는데 고민했다. 조금은 어렵게 느껴지겠으나 첫 번째로 단체명을 바로잡아가는 것이었다. 이미 경북지역을 제외하고는 전국 대부분이 단체명을 통일 시켜나가고 있었다. 이후 2017년 포항시와 협의, 조례를 개정해 푸른포항21추진협의회에서 포항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로 개칭하게 됐다. 회원들과 지역민들의 혼선을 줄이기 위하여 2년간 혼용의 기간을 주며 적응해 나가도록 했다. 경북의 어느 지역보다는 빠르게 적응해 나가며 회원들의 인식을 변화시켜나가기 위해 노력했다. △단점을 장점으로 전국의 지속가능발전협의회의 관계자들과 1년에 몇 번의 만남의 자리가 있다. 경북대회, 활동가대회, 영·호남·제주지속가능발전포럼, 대한민국지속가능발전대회, 전국총회, 여러 주제의 네트워크들, 타지역의 지속협과의 교류들을 접할 때마다 받는 질문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포항의 조직에 관한 것이다. 특히 지역연합회에 관한 것이다. 오랫동안 자생단체의 형태로 그리고 지역위원들 조차도 자생단체로만 알고 있고, 행정복지센터에도 자생단체의 분류 안에 들어가 있으며, 심지어 일부 공무원들도 자생단체로 알고 있으니 정체성의 혼선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환경에서 출발했으나 단순히 자연정화나 꽃나무 심기에 그치는 활동이 의제21의 정체성을 대변할 수는 없었다. 정치적으로 휩쓸리지 않게 하기 위해 지역의 리더그룹으로 형성돼 지역의제를 찾아가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것이 그 누구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유엔 산하의 작은 기구로서의 역할이 변질되어 갈 수밖에 없었다. 전국 어느 곳에서도 포항처럼 지역위원회 조직은 없었으며 이해할 수 없는 형태라고 조직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현재 포항의 상황에서는 지역위원회의 실천력과 위상은 상당했기에 단점으로 걱정을 할 것은 아니었다. 이에 연규식 대표는 27개지역위원회의 위원장회의에서 지역마다 지속가능발전목표에 관한 교육을 신청받고 신청이 오면 밤이든 낮이든 북구 끝 남구 끝이라도 찾아 교육에 힘썼다. 유엔의 지속가능발전목표를 말하고, 생겨나게 된 역사와 현재 포항시지속가능발전협의회로 개칭의 필요성과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해시켰다. 위원들은 조금씩 이해했고,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27개 지역위원회는 어떠한 의제사업이라도 실천을 끌어낼 수 있는 포항만의 장점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포항환경학교를 운영하다 지속가능발전은 환경에서 출발해 사회, 경제 등 사회의 모든 계층, 모든 분야에서의 의제를 찾아 목표를 세우고 이행과제를 찾아 실행해 나간다. 그렇다면 형식적 사업에서 벗어나 가장 핵심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됐고 연규식 대표는 마침 포항시에서 운영하는 포항환경학교의 운영에 대해 관심을 가졌고 적극적으로 수탁하고자 했다. 운영과정 중 회원들의 협력을 끌어내기 위한 어려움도 있었으나 그 이전의 운영보다는 눈에 띄게 변화를 꾀하도록 했다. 강사의 자질을 한층 올렸으며, 전문성을 강화했고, 강사의 역량강화에 크게 신경을 썼다. 또 프로그램의 다양화도 꾀했다. 해양을 끼고 산업화 된 포항으로서 여러 환경문제에 관한 시민의식을 고취시키는 것은 당연하나 해양환경에 관한 프로그램이 부족했다. 그래서 해양환경오염에 관한 프로그램을 강화하도록 했다. 학교 이용객의 다양화도 놓치지 않았다. 주 이용층이 초등학생을 비롯한 학생들이었다. 그러나 환경실천의 주 실천층은 모든 시민이기는 하나 주부 등 성인대상의 이용도 낮았다. 그리하여 찾아가는 환경학교의 연령층을 다양화 시켜나갔다. 아울러 지역의 오피니언리더들의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해 ‘포항시지속가능발전대학’을 운영했다. 마지막으로 실무자들의 업무환경개선이었다. 환경학교의 업무는 실무자들에게는 원거리 출퇴근과 토요근무 또는 외부캠페인 등으로 인한 과중한 업무가 수반되게 된다. 그리하여 교장직을 겸하면서 교장으로서의 임금을 전부 직원들의 임금상향으로 돌리며 업무환경개선에 노력했다. 포항환경학교는 운영상 포항시기후변화교육센터를 같이 운영하게 되는데 두 기관을 잘 연계해 협력해 나갈 수 있도록 했다. 이를 통해 2019년에는 대한민국 환경대전에서 우수프로그램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으며, 여러 타지역에서의 롤 모델로 방문하기도 했다. 또한 경북녹색환경지원센터와 협력해 강사들이 더 다양한 지역 환경에 관심을 갖도록 연구모임에 참여하도록 하고 결과물들을 만들어 내도록 했다. 무엇보다 기후변화교육센터와의 두 곳은 교육이 주 활동이기는 하나, 특히 포항의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과 적응노력이 더욱 절실하며 인식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적극적 활동의 필요를 느끼며 수도권지역과 취약계층위주로 실행하고 있던 쿨루프사업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차열페인트는 우리지역에서 펼쳐나갈 수 있는 좋은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실내외의 온도차를 4~5도 줄일 수 있는 이 사업은 에너지전환이 시대적으로 절대 필요하기에 과도한 전기에너지의 사용을 줄여나가고자 우리지역에 선도적으로 앞장선 사례다. △포항시지속가능발전대학을 열다 연규식 대표는 한 층 더 나아가 포항시의 오피니언리더들의 지속가능발전에 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포항환경학교를 운영하면서 그 속에 포항시지속가능발전대학을 꿈꿨으며 실행해 나갔다. 지역의 리더그룹을 중심으로 각계각층 다양한 구성원들로 총 12강으로 구성해 매주 목요일 저녁 150분 정도의 강의를 열었다. 지속가능발전의 개론에서부터 포항에서의 필요의제에 따른 전문가들로 강사를 구성했다. 포항의 이러한 노력은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도 적극 협력해줬으며 전 유엔 FAO베트남국가사무소장을 지낸 배종하 총장님은 멀리 베트남에 거주하면서 찾아와 강의를 해주기도 했다. 또한 육상생태계보존을 위한 강의로는 백두대간수목원 김용하 원장이 마다않고 찾아줬다. 뿐만 아니라 전국의 여러 방면의 유명 전문 강사들이 강의를 맡아 줬고, 포항의 의제에서는 포항의 여러 유명인들이 성심을 다해 강의를 맡아줬으며 하나같이 수강생들의 열정에 놀라워했다. △환경중심여행을 가다 환경학교를 운영하면서 교육은 실천과 연결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여겨 가족이 같이 실천의 중심에 설 수 있도록 환경여행을 적극 지원했다. 일회용품이 사용되지 않는 여행,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락에서 현수막 한 장이라도 환경을 생각하는 여행을 추구했다. 나무젓가락, 일회용컵, 물티슈 한 장 조차의 사용도 자제하는 불편한 여행을 제안했다. 몇 해가 지난 후 참여한 학부모는 이제껏 다닌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고 인생에서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고 전해왔다. 아이들과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확신이 생긴 여행이었다고 했다. 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도 해마다 생태문화체험을 떠난다. 관광버스 3대의 약 120여 명의 회원들이 견학차원에서 해마다 진행된다. 여행은 먹거리가 필수이다. 여기에서도 마찬가지 연규식 대표는 회원들에게 적극 제안했다. 실천을 돕기 위해 일회용컵 대신 접이식 스텐컵을 제공했고, 일회용 나무젓가락대신 조립식 스텐수저세트를 제공, 지참하도록 권장했다. 그 날의 실천은 120명이 음식물쓰레기배출량이 10리터도 되지 않았음은 4년이 지난 지금도 회원들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된 계기라고 회자되고 있는 일화이다. 이런 실천유도는 지속가능발전대학 선진지 견학에서도 이어졌다. 지속대학 견학에서도 개인컵 지참과 수저세트는 필수지참이었으며, 지속가능발전협의회의 어떤 행사라도 개인컵을 지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나가도록 했다. 이러한 것들은 연규식 대표의 건강한 환경을 지키고 미래세대를 위해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확고한 실천의지를 담고 있었다. △환경부장관상 수상 소소한 작은 것들에서부터 직원들과 강사들을 챙기고, 지역의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에서 그의 사람됨을 알 수 있다. 평소 회원들과의 자리에서 하는 그의 말이 생각난다. “우리조직은 수직조직이 아닙니다. 우리는 각자의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저는 대표로서 역할을 하며, 사무국은 사무국의 역할, 회원은 회원으로서의 역할, 학교는 학교로서의 역할로 서로 그 역할이 다른 수평조직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늘 그 자리에서 열심히 해 주시니 이 조직에서 대표로서의 역할을 잘 해 나갈 뿐입니다.” 2016년 3월 포항시장으로부터 위촉받아 2020년 6월30일까지의 대표직은 마감됐으나 많은 회원들이 그를 아쉬워한다. 함께 만들어가는 세상이 즐거웠다고 한다. 그는 포항의 지속가능발전에 대한 개념을 새로 정립하게 된 사람이다. 떠난 자리 아무것도 남기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서 그에게 표시한 감사패와 환경부에서 보내온 환경부장관상이 아쉬움을 대신해 그를 떠나보낸 자리에 남았다.
◇ 2020년 포항시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사업 추진 포항시는 어르신이 활기차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회참여활동을 위해 2020년도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을 포항시니어클럽 등 민간 수행기관 10개소와 시자체 52개 실과소 및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에서 실시하고 있다. 올해 포항시는 총 259억의 예산으로 노노케어 등 공익활동 및 공동작업, 제조・판매의 시장형, 취업알선형 등 총 1만4천850개의 다양한 일자리 창출로 어르신들에게 안정되고 활기찬 노후생활을 제공하고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이는 경북도는 물론 전국에서도 최고 수준의 사업량이다. 포항시의 노인일자리 확대 정책은 2015년부터 각종 지자체 및 수행기관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둬 지역의 선도적인 노인 적합형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고 있다. 특히, 2019년도에는 포항시와 노인일자리창출지원센터가 '2018년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지원사업' 평가에서 나란히 대상을, 포항시니어클럽이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 코로나19 감염증 확산 대비 사업 일시 중단에 따른 생활안전 대책 추진 △ 사업 참여자 활동비 선(先)지급 포항시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3월부터 중단된 노인일자리사업 참여자의 소득공백으로 인한 생활고를 해소하고자 공익형 참여자 7천161명을 대상으로 1개월분의 활동비 19억 3천만원을 선지급했다. 사업 중단 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취약계층의 생계지원대책 일환으로 선지급된 활동비는 차후 사업재개시 활동시간 연장을 통해 정산 할 예정이다. △ 노인일자리 민생 지원 상품권 지급 추진 코로나 19로 위축된 지역경제를 활성화 하고 저소득층의 소비여력 강화를 위해 공익형 노인일자리 사업 참여자에게 사업 재개 이후 4개월간 약 6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활동비와 함께 인센티브 형식으로 지급한다. 지급 대상은 공익활동 참여자(7천161명)로 본인의 희망에 따라 기존 활동비 27만원 수령 혹은 활동비 일부를 상품권으로 수령시 인센티브(5.9천원)을 추가 지급하는 형식이다. 포항시는 이를 위해 1차 추경예산에 국비 12.3억, 시비 4.6억 등 총 17억을 확보해 오는 6월 활동비 분부터 지급할 예정이다. ◇ 코로나 19 대응 노인일자리 운영 가이드 라인 준수 포항시는 5월 6일부터 실외분산 사업유형 부터 제한적, 순차적 재개함에 따라 고위험군에 속하는 노인들의 감염 예방을 위해 '코로나 19관련 노인일자리 운영 가이드라인'을 배포, 운영 중이다. 코로나 19 예방 및 관리를 위한 수행기관 종사자 및 이용자, 노인일자리사업 참여 노인의 역할을 제시하고, 건강보호를 위해 강력한 생활방역 체계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포항시는 감염유입 방지를 위해 개인위생 및 수행기관 시설 청결, 방역 유지는 물론 △사업단별 건강관리 책임자 지정 △수행기관별 방역관리 책임자 지정 △ 활동준비 단계 → 활동단계 → 활동종료 단계별 안전관리의무 이행으로 예방활동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매년 노인일자리사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하면서 경제적 도움(42.2%), 일하는 기쁨/건강회복(36.8%) 등 총 88.8%이상의 응답자들이 사업참여 만족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어르신들의 일자리 창출을 최고의 목표로 민관이 협력한 맞춤형 일자리 발굴과 특히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를 대비한 시니어 인턴십, 고령자 친화기업, 기업 연계형 일자리로 어르신들의 경험과 지식 등 인력자원을 활용하는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코로나 19 감염증이 종식된 상황은 아니므로 건강 취약계층인 어르신들의 감염병 예방과 건강 보호에 계속 철저한 방역 및 관리에 힘써 줄 것”을 당부했다.
포항시는 ‘코로나19’의 신속한 대응으로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데 크게 기여하는 한편 재난에 대처하는 역량이 매우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연말부터 중국 우한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코로나19는 올해 초부터 우리나라에도 확진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2월 21일 포항시에도 확진자가 발생했다. 코로나19에 사전 철저한 대비를 해온 포항시는 사회 전 분야에 대한 철저한 방역과 함께 안전수칙을 준수토록 하는 등 한발 앞선 준비를 해왔다. 특히 노약자, 어린이 등 코로나19에 취약하고 고위험군이 밀집해 있는 사회복지시설 1천200여 개소에 대해서 철통같은 예방으로 한 건의 확진자도 발생하지 않는 등 큰 성과를 냈다. 도내 인근지역에서 대량의 확진자가 발생한 것과 비교하면 포항시가 코로나19 대응준비가 얼마나 철저했는지 가늠이 된다. 복지시설 코호트 상황실 설치·운영 2월 중순부터 대구 신천지발 코로나 확진자가 폭증하고 3월3일 기준 국내 확진자가 5천명이 넘어서는 등 급속한 지역감염이 우려되자, 포항시는 사회복지시설에 대해 특단의 조치를 강구했다. 노인생활시설과 중증장애인시설 62개소(종사자 997명, 입소자 1천698명)에 대해 3월 9~22일 ‘예방적 코호트 격리시설’로 지정하고 일체의 외부인 출입금지는 물론 종사자와 입소자의 내외부 출입을 통제하는 등 철통방어에 들어갔다.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복지시설 코호트 상황실’을 설치ㆍ운영하고 △총괄지원반 △노인요양시설반 △노인공동생활가정 및 노숙인반 △장애인시설반 △여성ㆍ아동양육(모자)시설반 등 5개반을 편성ㆍ운영했다. 주요임무로는 △복지시설에 대한 강력한 외부인 출입통제 △종사자와 입소자의 출퇴근 여부 확인 △건강상태 이상 유ㆍ무에 대해 모니터링 실시 △시설에서는 감염관리 책임자를 지정해 보건소 및 담당부서와 상시협력체계 유지 △감염상황에 대해 상시 비상체제를 유지하는 등 복지시설에 대해 철통예방 체제를 구축했다. 또한 포항시는 2주간 격리시설에 따른 종사자와 입소자들의 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손소독제, 마스크 등 개인 위생용품과 함께 생수, 라면 등 각종 생필품을 제공했다. 코호트 격리의 성공은 격리기간 2주동안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도 못하고 시설에서 숙식을 한 종사자들의 희생도 한 몫 했다. 예방적 코호트 시설이 해제된 3월22일부터 5월5일까지 능동적 감시체계를 유지해 시설장 책임하에 전염병 위기상황 대응체제를 계속 유지토록 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결과 포항시에서는 복지시설 집단감염 사례가 단 1건도 발생하지 않는 등 타 자치단체에 비해 시설별 감염대응체제가 성공적으로 작동된 것으로 평가된다. 복지시설 운영 재개, 생활방역체계 구축 지난달 5일 이후로 정부의 ‘생활 속 거리두기 전환’ 방침에 맞춰 포항시는 노인, 장애인시설, 어린이집, 학원 등 집단 생활(이용)시설인 복지시설에 대해 복지국장을 총괄관으로 하고 3개분야 15개팀 108명의 팀원으로 생활방역체계를 구축했다. 아울러 각 시설장 책임하에 능동적인 감시체계를 확립토록 하는 등 상황 종료시까지 대응체제를 지속적으로 유지해 나가기로 했다. 포항시의 200여 명 방역단과 생활방역 이행을 위한 방역컨설팅팀 운영으로 경로당, 요양시설, 장애인시설 등 복지시설의 자기주도 방역을 확립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철저한 방역 하에, 그동안 긴 휴식기간을 끝내고 오는 8일부터 390개 어린이집이 일제히 개원한다. 포항시는 △손세정제, 마스크, 체온계 등 비치 △어린이집 내외부에 일제방역 실시 △어린이집 연합회 간담회 개최 △보육교직원에 대한 방역병 예방 강화 등 개원준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어린이집 개원의 뒤를 이어 오는 22일에는 616개소 경로당 운영 재개와 함께 그동안 부분적으로 개관(운영)해온 종합복지관 3개소, 자활센터 2개소, 노인복지회관 등이 모든 준비를 끝내고 전면 개관한다. 포항시는 어르신들이 즐겨찾고 이용하는 경로당에 ‘환경정비 도우미’ 60명을 배치해 경로당 환경정비와 방역지도를 통한 감염병 사전 차단하는데 주력한다. 손소독제, 소독티슈, 체온계 등 방역물품 1만5천696점을 비치하고 이와 더불어 홍보물 및 생활방역 핵심수칙을 게시하는 한편 각 경로당별 방역관리 책임자를 지정하는 등 감염병 예방에 만전을 기해 나가기로 했다. 저소득층 생활안정 대책 추진 코로나19 장기화로 사회전반의 생활 형태 변화로 인한 시민들의 위축된 생활은 곧 바로 소비위축으로 이어져 민생경제 전반에 큰 타격을 입고 있다. 특히 소비심리 위축은 소상공인, 자영업자에게 피해가 직결돼 소득감소, 폐업 등으로 대량의 실업자 발생과 함께, 소비가 얼어붙고 경제전반이 위축되는 등 저소득 서민층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포항시는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자 신속하게 저소득층 취약계층의 생활안정 대책으로 전환하는 등 경제지원에 시동을 걸었다. 이를 위해 ‘재난 긴급생활비 지원’의 제도적 근거 마련을 위해 지난 4월중 ‘포항시 저소득주민 생활안정 지원조례’를 신속히 제정했고 동시에 예비비를 신속하게 집행하는 한편 1차 추경예산에 코로나19 관련 예산 2천693억을 편성했다. 포항시는 저소득 취약계층의 생활안정을 신속하고 과감하게 지원하기 위해 3월부터 7월까지 한시적으로 730억원의 예산을 집중 투입키로 했으며 5월말 현재 660억은 지급을 완료했다. 주요사업으로는 △재난 긴급생활비 지원사업에 385억 △아동양육수당 105억 △저소득층 한시생활지원사업에 131억 △긴급복지지원사업에 102억 △입원자가격리자 생활지원비 27억 △예방적 코호트 격리시설 참여자 특별위로금 13억 으로서 전체 수혜자는 12만여 가구이다. ‘재난 긴급생활비 지원’사업은 코로나19로 인해 일시적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구에 대해 긴급생활비를 지원해 위기상황 극복을 지원하는 것으로서 전체 6만2천여 가구에 385억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지원대상은 기준 중위소득 85%이하 가구로서 소득ㆍ재산 조회를 통해 지급대상자를 결정한다. 1인가구 50만원, 2인가구 60만원, 3인가구 70만원, 4인이상 가구는 80만원을 지급한다. 또한 ‘저소득층 한시생활 지원사업’은 기초생활 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 1만9천919가구의 생활안정 및 소비여력 제고를 위해 포항사랑상품권 131억을 4월중 지급 완료했다. 아동양육 가구에 대한 생계안정을 위해 만7세 미만 아동에게 1인당 40만원씩 전체 2만6천100명에게 105억 수당을 4월중순 지급 완료했다. 갑작스런 생계곤란 등의 위기상황에 처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신속한 지원을 통한 위기상황 해소를 위한 제도로 생계, 의료, 주거, 교육 등을 분야별로 지원한다. 지원대상은 평소 중위소득 75%이하 가구로서 △코로나19에 따른 생계곤란 △주 소득자 사망 △가출 등의 사유로 소득을 상실한 경우 △중한 질병 또는 부상을 당한 경우 △가구구성원으로부터 방임 또는 유기되거나 학대 등을 당한 경우 △화재 등으로 인해 거주하는 주택 또는 건물에서 생활하기 곤란한 경우에 지원한다.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지원 국민생활 안정과 경제회복 지원을 위해 정부에서 전국민을 대상으로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소득 재산에 관계없이 포항시의 전 가구 22만1천633세대에 1천413억원을 지원하는 정부재난지원금은 1인가구 40만원, 2인가구 60만원, 3인가구 80만원, 4인가구 이상 100만원을 가구원수별 차등 지원한다. 이렇듯 포항시에서 지원하는 저소득 취약계층을 위한 각종 재난지원금과 정부에서 지원하는 긴급재난지원금 등 전체 2천100억원이 넘는 금액이 지원됨에 따라 전통시장을 비롯한 동네 편의점 등 골목상권에 손님들이 찾아와 활기를 띠고 있다. 관광지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등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있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노약자나 어린이 시설 등 사회복지시설은 상대적으로 코로나19 등 감염병에 취약하므로 평소 예방과 준비가 필요하다”며 “공무원, 사회복지시설장을 비롯한 종사자, 이용자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협조에 감사하다”고 표했다. 이어 “지난달 6일부터 시작한 생활 속의 거리두기에도 지속적인 참여를 바란다”며 “코로나19 장기화로 생활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시민들이 하루빨리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재난지원금을 비롯한 각종 지원금의 신속한 집행업무 마무리에 만전을 기해 줄 것”을 당부했다.
포항시가 다음달 말로 계약 만료되는 기존 음식물류 폐기물처리장을 두고 200km 이상 떨어진 충청지역에 위탁 처리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혈세 낭비라는 지적과 함께 늦장 대처, 무능 행정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기존 업체와의 재계약하지 않을 것이란 소문이 돌자 음식물쓰레기 처리업체가 준법 투쟁에 돌입, 애꿎은 시민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시민들은 포항시가 시에서 발생되는 음식물쓰레기 처리장 건설과 관련해 9년이란 시간이 있었음에도 허비했으며, 기존 처리장 계약 만료를 한달 남겨놓은 현시점까지 신규처리장 건설에 앞서 부지 선정도 하지 못한 것은 무능 행정의 극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코로나19로 위생과 건강에 민감한데, 쓰레기 발생량이 많은 여름철 성수기 음식물처리 곤란으로 위생상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라는 불안감과 함께 ‘경북 최고의 도시인 포항시가 음식물쓰레기 처리 문제 하나 해결 못하는 도시로 이미지 훼손이 생겨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음식물쓰레기 외지 위탁으로 일반 시민은 물론 음식물류 폐기물 다량배출사업장(포항 860여 곳) 운영 소상공인들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운데, 처리 비용증가로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신규 음식물류 폐기물처리장이 지금껏 설치되지 못한 문제와 관련해 포항시의회 의원들은 지난 세월 동안 자신의 지역구 내 입지선정과 관련된 안건만 제기돼도 주민들의 반발을 우려, ‘무조건 반대’만을 고집해 이러한 사태를 초래하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또한 "시의회가 집행부인 시 행정을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며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여론도 일고 있는 가운데서도 시의원들은 “시민들이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신규처리시설 설치와 관련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시민들은 성토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음식물쓰레기 처리업체가 포항 시내에서 ‘음식물류 폐기물 스티커’는 부착됐으나 규정 용기에 담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거하지 않자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이에 시민들은 음식물쓰레기 문제와 관련해 우려했던 것처럼 “무고한 시민들만 피해를 보기 시작한 것 아니냐”라며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 포항시와 시의회의 음식물류 폐기물처리장 대책 포항시의 ‘음식물류 폐기물’ 배출량은 연간 4만5천톤(다량배출사업장 포함 일 평균 160t)이 발생되며 포항시가 부담하는 비용은 평균 60억원 가량이다. 기존 음식물쓰레기와의 계약 종료 3개월 앞둔 지난 4월, 포항시는 2023년까지 신규처리시설 완공 목표로 입지선정을 위한 4개월간의 입지 타당성 조사용역에 착수했다. 포항시와 시의회는 신규 음식물류 폐기물처리장 완공을 전제로, 완공 전 3년(2020~2023) 동안 발생하는 음식물쓰레기 처리와 관련해 지난해 △포항시가 기존 음식물쓰레기 처리 업소인 ‘영산만산업’을 인수해 포항시설관리공단에 위탁 운영하는 방안 △외부 위탁 △기존 처리업체인 영산만산업(주)과 재계약 등 3가지 방안에 대해 모색한 바 있다. △ ‘영산만산업의 인수’ 방안을 두고 포항시는 용역비 3천만원을 들여 영산만산업의 시설비와 특허권, 무형자산, 운영 시 지출비용 등 타당성조사와 함께 감정평가를 실시했고, 영산만산업도 동일한 평가를 진행했다. 용역 결과 포항시가 의뢰한 업체와 영산만산업이 의뢰한 업체 간의 감정평가 금액 차이가 큰 점과 인수 시 개·보수비, 운영비용 등 지출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포항시가 판단해 무산됐다. △ 포항시는 기존 음식물폐기물 처리업체와의 계약 기간만료에 따라 지난 2월 공개입찰을 실시했다. 시가 공개 입찰 실시 결과 지난 4월 영산만산업(주)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으나 이후 포항시가 이를 번복하고 외부 위탁 추진을 발표했다. 이는 곧 ‘오천읍 SRF 반대비상대책위원회’가 나서 영산만산업과의 계약 연장을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이에 포항시는 오천읍 SRF 반대비상대책위원회의 주장과 같이 신규 음식물처리시설 완료(2023년) 때까지 외부 위탁처리를 결정하고 공개 입찰에 나섰다. 포항시의 공개 입찰은 컨소시엄 방식으로 진행 중인 가운데 외부 업체인 그린웨이산업(충북 청주 소재), 청광(충남 아산 소재)이 적격심사 중에 있으며, 두 업체가 음식물처리사업장으로 선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선정된 업체는 포항시와 1년 단위로 계약을 맺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 위탁 시 이전과 달리 새로운 공간 마련과 함께 또 다른 환경 오염문제가 발생된다. 외부 위탁업체로 운반하기 전, 각 읍,면,동에서 배출된 음식물쓰레기를 수거해 한 곳에 모을 ‘음식물 폐기물 적환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의 일 평균 음식물쓰레기 양은 160t이지만 피서철과 김장철, 명절에는 최대 300톤까지 발생, 이를 수용하기 위해 적환장이 마련돼야 한다. 적환장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발생할 수 있어 적환장 설치도 녹록지 않을 것이라 예상되며 ‘곧 다가올 여름철 처리가 지체될 시 음식물쓰레기 대란이 오지 않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기존 음식물처리업체인 영산만산업(주)의 입장 영산만산업 노동조합은 “지난 20여 년 동안 음식물쓰레기 수집 운반과 재처리 업무를 수행해 왔고, 특별한 결격 사유가 없었는데 적격심사에서 탈락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반발하고 포항시 행정 수장인 이강덕 포항시장을 겨냥해 “명확한 대책과 대안없이 대량 해고와 혈세 낭비하는 외지 위탁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포항시가 새로운 업체에 고용을 승계한다고 말하지만 58명 중 수집·운반 38명을 제외한 관리직 사원과 조업설비 인원 20명은 해고가 불가피하다. 코로나19로 힘든 경기 가운데 해고되면 취업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며 “생존권 사수를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투쟁할 것이다”고 경고했다. 영산만산업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공장부지는 포항시의 소유이고 영산만산업에 임대를 준 상태다. 시설과 장비는 영산만산업이 수십억원의 비용을 투자해 운영 중이나 포항시는 지난 4일, 돌연히 영산만산업과 ‘토지 재계약 불가’를 통보했다. 포항시와 영산만산업 간의 대행협약서 내용 중에는 계약 종료(2020년 6월) 이후 영산만산업과 ‘재계약 불가’라는 내용은 없으며 본 협약에 명시되지 아니한 사항이나 불분명한 사항에 대해서는 법령, 조례, 규칙 등을 준용하고 기타 사항은 ’을‘의 의견을 들어 ’갑‘의 해석에 따른다고 기재돼 있다. 이와 관련해 ‘을’의 입장인 영산만산업은 “포항시의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재계약 불가’ 통보"라며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영산만산업 관계자 측은 “포항시가 세부적격심사 전 ‘토지재계약 불가’를 통보하고 나서 기존 과업지시서 항목에 없었던 ‘처리장소(토지) 없음’을 문제 삼은 것은 시가 의도적으로 영산만산업을 배제하기 위함으로 보인다”며 “이는 곧 ‘갑의 횡포’가 아니냐”고 반발했다. 또한 “20여 년간 운영하며 악취에 관련된 민원은 거의 없으나, 최근 1~2달 사이 오천읍 SRF반대비상대책위가 나서 악취를 문제 삼으며 재계약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현재 악취제거 설비를 설치해 운영 중이며, 경북환경공단의 환경관련 검사에서도 악취 관련 문제는 없었다. 아무런 근거 없이 혐오시설이란 이유로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시가 이를 수용한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주민협의 의향서와 관련해서도 “제철동과 오천 주민이 재계약 반대하는 과정에서, 포항시가 제철동 주민은 영산만산업이 가동하기 이전부터 거주했고, 오천 문덕 주민들은 당시 거주하지 않았고 이후에 들어온 주민들이니 제철동 주민들과 협의하라고 해 ‘주민협의 의향서’를 작성해 포항시에 전달했다”며 “애당초 오천 주민들과도 협의하라고 했으면 우리도 노력했을 것이다”고 덧붙혔다. 또한 “지난 2013년 120억원의 시민의 혈세로 만든 음식물쓰레기 음폐수처리장이 외부 위탁처리 시 준공검사도 하기 전 문 닫을 수밖에 없게 된다”며 “혈세 낭비와 시민에 추가 비용부담 등을 불러온 책임자는 마땅히 처벌받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환경공단이 운영 중인 음폐수처리장은 입찰 당시 음폐수 일 평균 90톤을 처리하기로 했으나 현재 50톤밖에 처리하지 못해 준공검사도 받지 못했다. 이로 인해 포항시와 법적 다툼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포항시 관계자의 답변과 전망 이와 관련해 포항시 관계자는 “아직 신규처리시설을 설치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음식물처리장이 혐오시설이라 님비현상으로 입지선정에 있어 난항을 겪고 있다”며 “2023년까지 처리시설 완공을 목표로 현재 입지공고 및 입지 타당성 조사용역 중에 있다”고 답변했다. 영산만산업과 재계약 불가와 관련해 포항시 관계자는 “오는 6월30일이 계약종료일이기에 토지 재계약 불가 통지서를 송부했다”며 “계약 종료일을 알면서도 새로운 부지를 선정하지 못한 점과 재계약을 희망했으면 시청을 방문해 담당자와 재계약에 관련해 논의를 해야 하나 방문한 적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어 “영산만산업에게 제철동 및 오천 주민과 협의하라는 말은 전한 바도 없고 제철 동민의 ‘주민협의 의향서’ 또한 전달받은 적이 없다”며 “재계약을 희망했으면 오천 주민들과도 협의를 했어야 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영산만산업의 수집·운반 근로자들은 계약서 내 ‘고용 승계’가 명시되어 있으며 새로운 업체가 선정돼도 근무하는데 문제없으나, 이외 포항시와 계약하지 않은 사무원들은 신규 업체 선정 시 고용 승계와 관련해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포항시 관계자는 “음식물폐기물 적환장은 선정된 기업에서 위험부담을 100% 책임진다고 계약서 내 명시돼 있고, 음식물폐기물 다량배출사업장은 외지 위탁 시 부득이 사업장이 부담할 금액이 증가할 수밖에 없으나 음식물쓰레기량을 줄일 수 있는 감량기 설치를 권장해 비용부담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음폐수처리장은 기존 매립장 내 배출되는 침출수를 처리하기 위해 운영 중이었던 침출수처리장을 개·보수해 사용 중이며 현재 음폐수 뿐만 아니라 침출수도 처리하고 있기에 운영에 있어 큰 문제는 없다”고 주장했다. ◇ 포항시 음식물쓰레기 처리 관련 전망 현재 포항시가 위탁하려는 음식물쓰레기 처리업체는 충청도에 소재하는 업체로서 단순 계산했을 때 수집·적환장 설치와 유지·운반비·처리비 등을 포함, 현재 60억원의 처리비용보다 2배 많은 120억 가량의 혈세가 지출될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마저도 1년 계약에 불과해 인상을 요구할 시 더 증가할 수도 있다. 이로 인해 일반 시민은 물론 다량배출사업장 처리비가 사업주 부담 최소 20% 이상 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외에도 새롭게 신설해야할 적환장 선정과 악취 문제, 민원 제기 등 산적한 문제들에 포항시가 어찌 대응할지 시의 대처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포항 마장지(일명 창포지)의 수질이 강한 산성으로 오염돼 물고기가 살 수 없는 곳으로 밝혀진 가운데, 독극물질인 비소가 우려 기준보다 8.7배, 이타이이타이병을 유발하는 카드뮴은 2.8배, 아연은 4배 초과 검출되어 그 원인과 출처를 밝혀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마장지는 조선시대부터 말을 기른 마장골에서 유래된 곳으로 붕어와 잉어, 민물새우 등이 다수 서식해 청둥오리 등 철새가 날아오는 것은 물론 낚시터로도 많이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수 년 전부터 마장지 일대는 청태로 가득할 뿐 어패류가 멸종되어 과거에 넘쳐 났던 물고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마장지 생태정화위원회 A회장은 이러한 원인을 “1994년 8월 S사 등 연탄 업체 3곳이 있던 곳을 이후 2007년 4월 연탄 업체가 문을 닫은 뒤에도 석탄 부산물이 장기적으로 방치돼 오다 2010년 3월 Y사에서 매입해 신사옥 준공 공사를 진행하면서 석탄 부산물과 인근 산지의 절토 매립 등으로 침출수에 따른 하류 지역 수질 악화에다, 토양 오염이 지속돼 자연 중화 능력이 한계치를 넘어선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석탄 성분에는 발암물질인 수은, 납, 아연, 비소, 카드뮴 등 12종의 중금속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석탄에는 비소성분이 많다. 물고기 생존농도는 pH(산성도) 6.5이상이어야 한다. 현재 마장지 수질검사 결과 pH(산성도) 4.5~4.7 강산성으로 물고기와 생명체가 살 수 없다. 또한 중금속 오염 물로 농사를 지으면 농작물이 자라는데 지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생산물 섭취 시 각종 암이 발생되는 원인이 많다”고 지적했다. 만약 A회장의 주장대로 석탄으로 인한 중금속 오염과 산성화가 사실이라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방치된 폐탄광 주변 땅과 물에 비소, 카드뮴, 아연 등 중금속 오염물질이 그대로 흘러나와 하천에 생명체들의 씨가 마르고, 사람 몸속에 들어가게 되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모든 석탄에는 비소가 함유되어 있으며, 비소는 극미량으로도 인간과 동물을 치사시킬 수 있는 독극물이다. 비소는 인체에 치명적인 발암물질이며 돌연변이를 일으키고, 피부암, 폐암 발생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카드뮴은 이타이이타이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밝혀져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던 중금속이다. 이에 대해 포항시 관계자는 “마장지 좌측 Y사가 있는 쪽에 강한 산성화가 나타나는 것은 이암 때문이다. 이 지역은 이암의 분포지역으로 Y사가 사옥 부지를 성토하면서 이암 성분이 드러나서 산성화가 된 것”이라며 “석탄의 유해 중금속으로 인한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또한 “마장지 수질오염은 산성화가 주 원인으로 산성은 물고기 등 생명체가 살기에는 맞지 않지만, 농작물이 자라나는 데는 지장이 없으며, 식물에는 중금속이 농축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경북도는 2015년 4월8일 마장지 물고기폐사 원인규명을 위한 환경조사를 실시했다. 그 측정결과인 ‘포항 마장지 토양 및 저니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토양 산성도(pH)는 마장지 좌측 상단(길좌측 산, 6번)은 pH 3.9로 매우 강한 산성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또한 “저니 산성도(pH)는 마장지 좌측 상단(Y사 아래) 및 마장지 좌측 상단수로(저니-1)는 pH 4.2로 매우 강한 산성을 보이고 있다. 저니 중 카드뮴, 아연은 토양우려기준을 초과하는 수준으로 나타난다”고 했다.
김천시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민생·경제 여건 전반의 어려움이 확대됨에 따라, ‘민생·경제 종합대응 TF단 구성’, ‘민생경제 회복 아이디어 공모전 개최’, ‘민생·경제 활성화 방안 보고회 개최’ 등 경기회복 및 소상공인 지원을 위해 적극적인 관심과 발 빠른 대처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김천시 일자리경제과에서는 소상공인 등 지원을 통한 지역 경기 활성화 및 포스트(post) 코로나 대비를 위해 선제적인 예비비 집행 및 추경예산 편성을 통해 약 21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김천사랑상품권 확대 발행(200억원→500억원), 전국 최고 수준(500억원 규모)의 소상공인 특례보증사업, 코로나19 지역고용대응 특별지원사업, 소상공인 피해점포 지원사업 등 소상공인 지원 및 경기회복 추진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먼저, 김천사랑상품권의 연간 발행액을 대폭 확대해 지역 자금의 역외유출 방지 및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당초 발행규모 200억원에서 500억원까지 확대 조치하고 6월 말까지 내수 진작을 위해 김천사랑상품권 특별할인(개인 10%, 법인 3~5%) 판매를 시행 중에 있다. 또한 카드형 상품권(4월 27일) 및 모바일 상품권(5월 중순)을 도입해 시민들이 더욱 편리하게 지역화폐를 사용할 수 있도록 관련 업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김천사랑상품권 가맹점(사용처)를 당초 약 500개소에서 약 2천600개소까지 확대했으며 판매대행점(취급은행)도 지난해 대비 2배 늘어난 44개소로 확대해 시민들의 구매 및 사용 편의성 제고 앞장서고 있다. 둘째, 김천시는 갈수록 어려워지는 소상공인의 자금난을 일부 완화하기 위해 소상공인 특례보증사업을 지난 4월 2일, 500억원 규모로 확대 시행했다. 지원한도를 당초 2천만원에서 5천만원까지, 이자차액을 3% 범위 내, 이자보전기간을 2년에서 5년까지 상향 조정하고, 취급 은행을 4개소(국민, 농협, 대구, 신한)에서 8개소(기업, 우리, 하나, 김천농협 추가)까지 늘렸다. 이런 대폭적인 사업 확대 조치로 인해 소상공인들에 대한 신청 수요가 일시 폭증해 단 5일만인 4월6일자로 자금이 모두 소진된 결과를 낳았다. 시는 특례보증사업의 이번 확대사항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한시적 적용 사안이 아니며, 관련 조례 개정(4.2)에 따라 향후에도 경기 침체로 힘들어하는 지역 소상공인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전국 최고 수준의 혜택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셋째,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에 나선다 우선 ‘코로나19 피해점포 재개장 지원사업’으로, 확진자가 방문했거나 집단감염 위험시설로 분류되어 휴업한 점포에 국비 약 3억 3천만원을 투입해 재개장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한다. 확진자 방문(운영)점포는 최대 300만원까지, 집단감염 위험시설 휴업 점포는 최대 10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해당 사업의 혜택을 받지 못한 소상공인에 대하여는 약 38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코로나19 소상공인 피해점포 지원사업’을 통해 사업장별 50만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신청기간 및 세부 기준은 5월 중 별도 홍보할 예정이다. 넷째, 소상공인 경영 부담 완화를 위해 전기요금 및 카드 수수료 지원사업, 일자리 창출 지원사업을 실시한다. 유례없는 경영위기를 맞은 소상공인에게 총 사업비 약 38억원을 투입해 전기요금 최대 40만원·카드 수수료 최대 50만원을 지원할 예정이며 이를 통해 소상공인의 경영 부담 완화로 민생경제 회복에 나설 전망이다. 지원대상은 김천시에 주소와 사업장을 둔 소상공인이고, 신청 전용 모바일앱을 도입해 주민들의 편의를 도모할 예정이다. 5월 초 신청을 목표로 사업 진행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자세한 사항은 김천시청 홈페이지 및 읍면동 게시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생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입은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일자리창출 지원사업을 실시한다. 대상은 김천시에 사업장을 둔 소상공인 200여 업체이며, 시비 6억5천만원을 투입해 소상공인의 신규 직원 채용 1인에 대해 인건비 일부 및 4대 보험 사업자부담분을 지원한다. 사업대상 세부기준 및 지원금액 등 세부계획을 수립해 2020년 5월 중에 본격적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다섯째, 코로나19로 인해 직접 타격을 입은 근로자를 위한 특별지원 및 지역주도 일자리사업으로 지역 내 고용안정을 도모한다. 고용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취약업종 근로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지역고용대응 특별지원사업’ 접수를 받고 있다. 신청기간은 4월 29일까지이며, 특수고용형태종사자 프리랜서 등은 김천상공회의소, 무급휴직 근로대상자는 (사)경북경영자총협회(김천시취업지원센터)를 통해 상담 접수가 가능하고, 김천시청 홈페이지를 통한 온라인 접수도 가능하다. 지원대상은 코로나19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은 업종 종사자로 ▲10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의 무급 휴업・휴직자 ▲학습지 교사・문화센터 강사・스포츠 강사 및 트레이너 방과후 교사・학원강사 등 교육업 ▲연극・영화・예술인・공연스태프 등 문화예술업 ▲관광가이드・문화해설사 등 관광업 ▲운전원(대리운전)전세버스 기사 등 운송업 등이며, 월 최대 5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접수 마감 후에는 10여 일간 지급대상자 심사 선정을 통해 지급대상자에게 특별지원금을 일괄 지급할 예정이다. 또한 이 외의 특별지원 사업으로‘실직자 단기일자리 제공 사업’을 실시한다.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일용직,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등이 대상이 되며, 최대 3개월간 단기 일자리를 제공해 시행하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김천시청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충섭 시장은“코로나19로 침체된 지역경기에 활력을 불어넣고 소상공인의 경영 안정화를 위해 다양한 사업을 통해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고 말하며“시민들이 체감하고 보다 신속하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관련 업무 추진에 더욱 적극적으로 매진하는 등 경기 회복 정책에 올인(All-in)하겠다”고 밝혔다.
포항시는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린이집과 가정에서 함께 예방하고 극복하기 위한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는 예상치 못한 코로나19가 장기화되자 함께 안전하고 건강한 생활을 해 나가자는 취지로 마련했다. 가정양육 등으로 지친 부모와 집콕 아이를 위해 ▲아이누리장난감도서관 스루(True) 서비스 운영 ▲아이누리 놀이키트 무료 서비스 제공한다. 또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몸소 실천한 우리만의 특별한 꿀팁으로 사례를 찾는 '코로나19를 잡아라' 공모전을 개최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고강도 사회적거리 유지와 장난감도서관의 장기 휴관에 따른 서비스 공백 해소와 이용자 간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비대면형 서비스도 제공한다. ▲아이누리장난감도서관 스루(True) 서비스 운영 뱃머리장난감도서관은 드라이브 스루로 운영되며 평일(월요일 제외) 오후 2시부터 오후 4시, 주말 토요일(일요일 제외)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평생학습원 1주차장에서 운영하며 자동차에 탑승 한 채 이용한다. 오천장난감도서관은 워킹 스루로 운영되며 평일(월요일~금요일) 오후 2시부터 오후 4시까지 오천읍민복지회관 후문에서 운영중이다. 모두 육아종합지원센터 홈페이지 선착순 사전접수하며 개인회원에 한해 소형 장난감 2점 이용 가능하다. 스루 서비스는 지난달 20일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대여 229건, 반납 398건으로 점차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아이누리 놀이키트 무료 서비스 제공 집콕으로 무료한 어린이들을 위해 아이누리 장난감 도서관 회원들에게 놀이키트(4종 선물꾸러미) 200개를 지난 9일에서 10일 제공해 부모와 아이들의 뜨거운 호응과 인기가 있었다. 이에 2차로 오는 16, 18일 200개 추가 배부할 예정이다. 14일부터 육아종합지원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선착순으로 접수한다. ▲‘퐝퐝퐝 코로나19를 잡아라’ 공모전 개최 무료한 일상 속에서도 코로나 예방과 극복을 위한 우리들만의 특별한 꿀팁을 소개하는 등 어린이집과 영유아 가정 부모들이 참여하는 공모전도 마련한다. 어린이집 및 가정에서 안전하고 슬기롭게 실천한 사례로 어린이집 부문(보육교직원)과 가정(영유아와 부모아)부문으로 나눠지며, 분야는 사례 보고서, UCC, 웹툰으로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다. 접수는 오는 28일부터 5월3일까지 포항시육아종합지원센터로 제출하고, 심사는 1, 2차 걸쳐 선정되며 5월중 결과를 발표한다. 시상은 시상은 △대상 1점(50만원) △최우수상 부분별 1점씩(30만원) △우수상 부문별 3점씩(10만원) △장려상 부문별 10점씩(5만원)을 포항사랑상품권으로 포항사랑상품권 시상금이 수여된다. 아울러 시는 코로나19로 어린이집 휴원이 미뤄지면서 어린이집과 가정을 위해 안전하고 유익한 사업을 지속적으로 발굴할 계획이다. 아동과 부모에게 아동발달에 따른 놀이와 양육방법 지원으로 가족 간 소통기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최규진 포항시 복지국장은 “앞으로도 코로나19로 제한된 공간 안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이 신체적ㆍ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보다 더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 및 발굴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포항시는 그동안 책을 읽는 공간으로만 여겨졌던 도서관을 독서 공간 제공이나 책을 빌려주는 것 외에도 각종 다양한 문화행사들을 기획·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정부가 매년 실시하는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민들이 공공도서관을 이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로는 ‘집 가까이에 쉽게 갈 수 있는 도서관 부족’을 가장 먼저 꼽았으며, 독서의 가장 큰 걸림돌은 ‘독서 습관화가 안 되어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포항시는 ‘독서문화도시’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공공도서관의 접근성 문제와 독서를 자연스럽게 습관화할 수 있는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황금열쇠로 ‘작은도서관’ 건립에 주력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라도 책과 만날 수 있는 도시’ 조성과 관련한 사업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남구 오천읍과 연일읍, 구룡포 및 북구 흥해읍 등 모두 4곳에 공공도서관을 건립하는 독서 인프라 확충에 나서고 있다.
“2020년은 현안 사업과 공약 사업을 차질없이 진행하고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하는 투트랙 전략을 이어갈 것입니다” 백선기 칠곡군수가 2020년 새해 신년 계획을 밝혔다. 백 군수는 “옛 속담에 농사꾼은 굶어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는다는 말처럼 이듬해 뿌릴 씨앗이 없으면 미래도 없다” 며 “U자형 호국관광벨트 사업 등의 현안 사업의 완벽한 마무리는 물론 메가프로젝트 기획단 등을 통한 신성장 동력 발굴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포항시는 올해 시정을 ‘시민과 함께 새로운 포항을 향한 출발’을 위하여 민생경제가 활력을 찾고, 미래 신성장 산업이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며 도시환경과 복지가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힘을 모으기로 했다. 또한 이 같은 다양한 분야의 과제들을 풀어나가는 동시에 경제와 환경, 복지의 지속성을 확보하는데 초점을 맞추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강덕 시장은 “지난 2019년 한해는 더 큰 도약을 위한 도전의 과정이자, 시민의 힘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낸 축적의 시간이었다.”면서 “2020년 올 한 해는 미래 100년을 내다보고 시민의 꿈과 희망이 어우러지고, 행복의 가치를 실현시켜 나가기 위해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데 초점을 맞춰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경주취연(醉硯)벼루박물관장 손원조 선생은 벼루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지난 50여 년간 이를 수집해왔다. 지난 4월 25일 경주읍성 서편 인근(경주시 화랑로 107번길 10-9)에 신축 건물을 짓고 대한만국 유일의 벼루전문박물관인 ‘경주취연벼루박물관’을 개관했다. 최근 손 관장을 만났다. 벼루를 통해 다가올 새천년을 준비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벼루에 대해 벼루는 붓, 먹, 선지와 함께 하여 전통적으로 문방사우(文房四友)로 불린다. 벼로는 벼루의 옛말로, 훈민정음 해례본 (1446년) 용자례에서 언급되었다. 묵색(墨色)을 발하는 좋은 벼루는 예부터 문인 사이에서 애완(愛琓) 진중(珍重)되었다. 단계연(端溪硯-黃東省)ㆍ음주연ㆍ조하록석이 최상품으로 알려져 있다. 벼루는 중국이 기원이며, 서예와 그림 그리기에 쓰인다. 잔존하는 벼루들은 고대 중국 초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회, 경제, 문화에 영향을 받으면서 당나라 (618-905년) 시기에 벼루의 수요는 늘어갔으며 송나라 (960-1279년) 시기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다. 벼루(硯)는 동양 전통문화에서 문자를 사용하기 위한 필사도구 중의 하나다. 고대의 문자 사용은 지배자들의 통치수단이면서 지식인들의 사상을 보급하는 주요도구였다. 이후 사회가 발달하면서 일반 백성에게도 차츰 보급되기 시작하는데 여기에 불교와 도교 등의 종교가 퍼져나가면서 이의 전파를 위해 더욱 확산된다. 또한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문예(文藝)가 발달하는데, 문자가 예술화되면서 서예란 장르로 발전하고 전통적인 예술양식인 회화 역시 채색기술의 발달과 함께 크게 발전한다. 이런 가운데 필사도구는 발전을 거듭하는데 붓과 먹, 벼루, 종이 등 4가지를 문방사우(文房四友)라 하여 중히 여기게 된다. 이중 벼루는 단단한 재질의 특성으로 오랜 세월을 버티고 아름다운 무늬와 정교한 세공으로 인해 완상(玩賞)의 대상으로도 사랑받아 왔다. ▶경주취연(醉硯)벼루박물관에 대해 우리나라 최초로 벼루박물관인 ‘경주취연(醉硯)벼루박물관’은 경주시민뿐 아니라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취연(醉硯)벼루박물관에는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 벼루를 비롯해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벼루 등 다양한 석질(石質)과 형태는 물론 미려(美麗)한 조각을 한 우리나라 벼루들이 모두 11개의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다. 이들 진열장에는 삼국시대의 흙벼루(土硯)를 시작으로 고려시대 풍자벼루(風子硯)는 물론 조선시대의 오석벼루(烏石硯)과 자석벼루(紫石硯), 옥벼루(玉硯), 수정벼루(水晶硯), 나무벼루(木硯), 쇠벼루(鐵硯), 도자기벼루(陶硯) 등 100년 이전의 벼루 100여 점이 재질에 대한 설명과 함께 벼루명을 부착해 관람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벼루의 대가, 손원조 관장에 대해 벼루박물관을 개관한 손원조 관장은 경주의 유명 인사다. 경주 출신인 손 관장은 197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벼루가 있는 곳이라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찾아가 수집해왔다. 손 관장은 수십 년간 지역 언론에 몸담아 왔으며 3년 전까지만 해도 왕성한 활동을 했다. 또한 제6대 경주문화원장을 역임했다. 그는 50여 년 전 처음 취미로 선조들이 아끼던 벼루를 한두 점씩 수집하면서 모은 벼루가 10점이 되고 100점이 되면서 다양한 재질과 형태의 벼루돌에 새겨진 여러 가지 조각들에 매료(魅了)되어 벼루전문 수집가로 변신하게 되었다. 지난해까지 모두 1500여 점의 각종 벼루를 수집해 벼루전문박물관을 개관하게 되었다. 벼루의 대가로 불리는 손 관장은 “6~7세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가 축문을 짓고 아버지가 지방을 쓸 때 마다 직접 먹을 갈아본 경험이 있어 벼루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70년대 초부터 이를 수집하게 됐다. 지난 49년간의 세월 동안 투자한 많은 노력들이 너무 아까워서 결국 지난 4월, 우리나라 최초의 벼루전문박물관을 개관하게 됐다”고 벼루수집의 동기와 과정을 설명했다. 벼루 수집가로 소문이 난 손 관장은 지난 2001년에 봄에는 경주보문단지의 세계문화엑스포공원 상설개장 당시 한 달 동안 한국벼루 특별전시회를 가져 인기를 모았으며, 2003년 8월 경주세계문화엑스포 본 행사 때도 일주일 동안 벼루특별전시회를 열었다. 또한 지난 2017년에는 경주국립박물관에서 2달간 ‘검은 구름 뿜어내는 검은 벼루 연’이라는 주제로 특별전을 개최해 전국에서 찾아온 많은 관람객들로부터 주목을 끌었다. ▶경주취연벼루박물관 관람을 마치며 경주취연벼루박물관에는 각종 벼루 이외에도 120년 된 종이를 비롯해 105년 된 먹과 70년 전부터의 각종 종이류는 물론 연적(硯滴)과 수십 점의 연갑·연상(硯匣·硯床), 필세(筆洗), 문진(文鎭), 붓통, 붓걸이, 고비 등 다양한 문방사우 관련 각종 문구류가 전시돼 우리 선조들의 빼어난 심미안(審美眼)과 선비정신을 돌아보게 한다. 경주취연벼루박물관은 경주읍성 주변의 명물로 벼루전시장은 2층에 자리하고 있으며, 1층은 북카페로 관광객들과 지역민의 쉼터의 역할을 하며 문화사랑방 구실을 하고 있다. 매일 오전 10시에 문을 열고 오후 5시에 문을 닫는다. 경주에 갈 일이 있으면 신라천년의 숨결과 함께 ‘취연벼루박물관’에 들러 벼루문화의 천년 향기에 흠뻑 젖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문의: 경주취연벼루박물관 손원조 관장 010-3508-4676) 신일권 기자
(주)남부정밀은 보빈교정 기술 보유, 보빈교정기 개발, 24시간 산업기계정비를 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정밀가공, 환경설비, 집진기, 승강기 등의 플랜트를 설계부터 제작 설치 후 유지 보수까지 하는 기업이다. 30년 이상의 튼튼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생산설비의 전 과정을 폭 넓게 아우르는 기업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는 (주)남부정밀 배용조 대표이사를 만났다. ◆ ㈜남부정밀은 어떤 기업인가 (주)남부정밀은 보빈교정기를 개발해서 선재를 감아주는 틀을 교정하여 재사용 할 수 있도록 교정하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빠르게 설비를 가동할 수 있도록 24시간 산업기계정비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 되어 있고, 정밀도가 높은 돌발성 단품종 정비성 가공품을 생산하여 산업기계 정비에 효율적이며, 환경설비, 집진기, 승강기 등의 플랜트를 설계부터 제작 설치 후 유지 보수까지 하는 기업이다. ㈜남부정밀은 대표이사 배용조가 설립하였다. 1992년 10월 포항시 상도동에서 직원 2명과 함께 기계 부품 가공업체 남부정밀공업사로 출발하였다. 2000년 상도동에서 현 사업장으로 회사를 이전하였다. 2011년 8월 ㈜남부정밀 법인을 설립하였다. 연일읍에 위치한 1,800평 규모의 공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현재 직원 24명과 함께 보빈교정, 산업기계정비, 플랜트 제작 설치, 정밀가공을 수행하고 있다.